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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가족의 해체

느닷없이 찾아온 모르는 사람들이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갔다. 수민(문승아)은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어 물어보지만 어른들은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아빠와 엄마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집에 살 수 없다고만 말할 뿐이다.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는 엄마(김채원)와 바빠서 자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임호준) 사이에서 오빠 진호(최준우)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다. 이에 수민은 오빠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오빠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특목고에 가려는 것뿐이다. 똑똑한 엄마를 닮고 싶은 걸까. 아빠랑은 말도 섞고 싶지 않아 한다. 대체 오빠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집이 팔리면 아빠와 엄마 둘 중에 누구와 살지 정해야 한다고만 했다. 수민은 누구와 살게 될지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중 혼자서 경우의 수를 깨치게 된다. 오빠는 벌써 경우의 수를 아냐며 대견한 듯 말하지만 사실 불안함이 만들어 낸 슬프고 웃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가족은 서로 모여있지만 늘 어색하고 놀러 가본 적도 없어 서먹하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주말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결국 아빠가 일하는 박물관으로 또 출근도장을 찍었다. 앞으로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해서 재미있는 데도 많이 가고 추억을 쌓자고 다짐하지만 그때뿐이다.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안다. 그것보다 수민이 진짜 바라는 바는 예전처럼 다시 넷이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은 점차 희미해져만 한다.

수민은 누구와 살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지만 엄마와 함께 간 부동산에서 그 실체를 파악하며 실망한다. 엄마는 방 두 개짜리를 구하고 있었다. 엄마-오빠-나 이렇게 셋이 살 집은 구하는 게 아니었다. 넷은커녕 엄마와 오빠, 나까지 셋이 사는 일도 어려워 보였다. 부모님과 나와 오빠가 각각 찢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일까. 수민은 매일이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영화 <흩어진 밤> 스틸컷

영화는 갑작스러운 부모의 별거 선언에 자녀들이 감당하게 될 심리적 동요를 면밀히 포착했다. 어린 나이에 떠맡게 된 힘든 선택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러냈다. 카메라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있고 어른들은 화면 밖으로 밀려나거나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거나 수민과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 세대에게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수민의 나이가 열 살인 이유는 의미심장하다. 열 살쯤 되면 자존감과 자신만의 기준이 생겨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할 때이다. 아직 어려 보여도 당당히 가족의 일원으로 대소사의 잘잘못을 가리고 어른의 말에 대꾸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부모와 잦은 트러블을 겪기도 하고 혼자만의 생각과 비밀을 간직하며 성장하는 시기다.

수민은 박물관에서 이동하던 구석기 사람들이 비로소 농경을 이유로 한곳에 정착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 이후 한차례 더 아빠와 밥 먹는 장면에서 명란젓에 빗대어 구석기와 신석기의 정착 생활을 상상하는 장면이 한 번 더 강조된다. 수민은 누구와 살게 될까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민을 끝내고 안정된 가정에 정착하고 싶다는 바람을 강력히 피력한다.

하지만 영화 속 배려 없는 부모는 아이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입에 올린다. 가족의 해체를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증오하는 분위기를 내내 연출한다. 아이들은 내색하지 않아도 부모의 심리 상태를 다 알고 불안해한다. 부모의 이혼은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그 결과는 아이들에게 향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원하지 않았지만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평생 큰 상처로 남는다.

열 살 아이가 감내해야 할 낯섬과 공포는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부모의 사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에 앞서 충분한 설명으로 이해시키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떨어져 살지만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자아를 존중하는 일환으로 본인 선택을 유도하는 게 좋다. 크고 작은 일을 함께 논의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존재의 이유를 느끼고 구성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이에게도 선택권이 있고 의사가 있다. 더 이상 가정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때문에 극중 수민이 내뱉는 촌철살인 대사가 마음에 콕 하고 박힌다. “뭐야 다 벌써 정한 거야? 왜 엄마 아빠 맘대로 해!”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보호자와 롤 모델 이상의 안정감 주던 부모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심리적 동요가 큰일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큰 세계와도 같기에 그 세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 이유를 찾다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 파장을 넌지시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먹먹하고 담담하다.

다만, 독립영화의 특성상 사운드 믹싱과 대사 전달력이 다소 미흡하다. 하지만 문승아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력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 문승아는 <소리도 없이>에서 차분한 연기로 긴장감을 유발한 납치된 소녀로 활약한 바 있다. 데뷔작 <흩어진 밤>으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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