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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도] 전형적이지 않은 음악영화의 끌림

<크레센도>를 보기 전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툼을 벌이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평화의 분위기. 적당한 긴장을 유발하다 이내 사건은 해결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음악영화 말이다.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힘든 시기에 음악이 주는 안식과 치유의 경험은 공통분모가 되어 큰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 시의적절한 음악영화가 줄 수 있는 적당한 힐링의 메시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따라가는 듯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어느새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현실에 발등을 찍힐 수밖에 없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두 집단이 다툼과 반목을 거듭하며 음악으로 성장하는 큰 줄기로 하되,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음악이 무조건 화합과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놓아버리고 공상과학적이고 판타지다운 결말을 향하지도 않는다. 음악에도 차이와 차별이 존재하며 이를 좁히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시도한다.

반세기 분쟁이 낳은 깊은 골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에두아르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를 선별해 평화콘서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원들은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준비 없는 화해를 요구하는 분위기를 맞닥뜨린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몰려든 젊은이들에게 오랫동안 이어온 갈등을 급하게 해결하려 들자 이내 반감은 커진다. 이념과 종교, 문화, 경제력까지 다른 그들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다. 오디션을 통과하는 것보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습하는 게 더 어려운 과제처럼 보인다. 영화 내내 두 진영의 틈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이들은 크고 작은 갈등을 초래하며 며칠 앞으로 다가온 평화 콘서트를 향해 위태롭게 달려간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싹트고 한 뼘 더 성장한다.

영화는 오프닝을 통해 같은 곡을 연주하는 이스라엘 남성과 팔레스타인 여성의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한눈에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는 시작과 동시에 영화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차분히 연주하는 남성과 총과 폭탄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 위험천만한 여성이 등장한다. 여성은 급기야 방 안으로 들어온 최루탄 연기마저 익숙한 듯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가 양파를 잘라 냄새를 맡으며 이를 악문다.

이 여성에게 음악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보다는 성공을 향한 목표,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 자체로 해석된다. 누군가는 취미로 시작했을 음악이 이 여성에게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신념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팔레스타인 출신자의 고난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오디션이 열리는 이스라엘 텔아비브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이스라엘 군인이 지키고 있는 살벌한 검문소를 갖은 모욕을 견디며 통과해야만 한다.

전형성을 탈피한 이 영화의 감동

영화 <크레센도> 스틸컷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거장에게 배우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한곳에 모였지만 감정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상황을 여러 번 보여준다. 정확히 반으로 나뉜 상황을 중재하고 피 끓는 젊은이들을 교정하는 존재는 에두아르트다. 단원을 이끄는 진정한 리더로서 영화의 재미와 긴장감을 적절히 분배한다.

그는 지휘자와 어른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 성장에 일조한다. 재능 있는 음악가의 앞길을 멘토링 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뜨겁기만 해 주체할 수 없는 가슴을 차가운 이성으로 식히는 법을 가르친다.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각자의 사연을 허심탄회 털어놓을 수 있는 테라피스트로 변신하기도 한다.

또한 삶을 먼저 살아 본 인생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단원을 뭉치게 만드는 유화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리고는 여러 번 충고한다. 오케스트라는 혼자만 잘해서는 완전할 수 없다고, 서로의 연주를 귀 기울여 듣고 존중하며 소통해야 진정한 하모니가 생긴다고 말이다.

<크레센도>의 미덕은 반세기 넘는 극한 대립의 종식이 단 3주 만에 해결될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데 있다. 영화가 끝나도 삶은 계속되고, 영화가 해피엔딩일지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변화는 한걸음에 시작되지 않음을 직시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구한다. 진정한 화해는 ‘시도’에서 시작된다고 말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기보다 시작이 반이라는 의미에 방점을 찍은 영화라 할 수 있다.

한편, 영화는 최고의 지휘자로 불리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거장은 동서 문명 간의 화합을 다룬 괴테의 시집 《서동시집》에서 착안한 이름을 지어 1999년부터 활동했다.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지역 다국적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분쟁지역에서 공연해왔다. 우리나라에는 2011년 8월 15일 광복절에 임진각에서 평화콘서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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