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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열네 살 소녀들이 만난 세상의 끝

‘종착역’ 스틸컷 / 필름다빈

인생은 흔히 기차에 비유된다. 기차가 철도를 따라 역에 도착하는 거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종착역>은 중학교 1학년 학생 4명이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신창역을 향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서사만 보면 모험에 가깝지만 역동적이기 보다는 정적이다. 마치 기찻길은 구부러져 있지만 기차에 탄 우리는 일직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듯 말이다.

작품이 주목하는 건 신창역이 지닌 의미다. 대한민국 서울 지하철노선도를 보면 수많은 종착역이 있다. 그중 신창역을 택한 이유는 이곳이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내는 종착역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14살의 나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이다. 신창역을 끝으로 1호선은 끝이 나지만, 이후 남쪽으로 내려가는 지하철 노선도가 존재한다. 네 명의 아이들 역시 인생의 한 챕터를 끝냈지만 새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이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두 가지 설정을 더한다. 첫 번째는 네 주인공 중 한 명인 시연이 전학생이라는 점이다. 시연은 전학을 와서 사진 동아리 ‘빛나리’에 가입한다. 동아리 부원인 연우, 소정, 송희와 시연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은 새로운 시작이 주는 낯선 느낌과 설렘을 동시에 담아낸다. 동아리 담당교사가 방학숙제로 준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말에 하늘이나 벽 같은 상징적인 소재 대신 가본 적 없는 신창을 향한다는 점 역시 이런 낯설음과 설렘을 느끼게 만든다.

두 번째는 마을회관이다. 신창역에 도착한 아이들은 역을 찍다가 동네 곳곳을 돌아다닌다. 시골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던 중 향한 곳이 노인들이 자리를 비운 마을회관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공통된 경험을 말하는데 그중 하나가 할머니의 죽임이다. 아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인생에서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이란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마을회관이라는 점은 꽤나 인상적이다.

‘종착역’ 스틸컷 / 필름다빈

인생이란 건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성장이 아닌 죽음이란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마을회관은 이 시간을 의미한다. 이곳에 시작과 성장의 의미가 강한 아이들이 들어온다. 그것도 중학교 첫 학기, 중학교 첫 번째 방학을 맞이해서 말이다. 하나의 공간에 이질적일 수 있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종착역’이 지닌 이중적인 의미를 형성해낸다.

공동연출을 맡은 권민표, 서한솔 감독은 배우들에게 많은 자유를 할애했다고 한다. 장면에 필수적으로 들어갈 대사만 주고 나머지는 네 배우가 실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듯 진행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카메라 역시 뒤로 빠져서 아이들을 관조하는 시점을 취했다. 이런 시점은 어른의 시점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낸 인위적인 모습 대신 자연스런 상황을 연출해낸다. 동시에 정적인 분위기를 강화한다.

이 정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건 마치 시와 같은 감성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어린아이들이 모험을 떠난다’는 서사를 지닌 작품들은 동적인 성격이 강하다. 올해 초 개봉했던 <아이들은 즐겁다>나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계속해서 사건을 만들어 아이들이 모험을 떠나게 만들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갈등과 화해를 통해 우정과 성장을 이끌어낸다. 이 작품은 이 재미를 포기하는 대신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 원천은 중학교 1학년 여학생으로 주인공을 설정했다는 점에 있다. 나이가 어린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했으면 모험서사의 느낌이 강했을 것이다. 여기에 두 감독은 사전조사를 통해 남학생들의 경우 운동장이나 PC방 같은 자신들의 공간이 강하기 때문에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게 만들 경우 앞서 언급했을 모험서사의 느낌이 강했을 것이란 점을 언급했다. 때문에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택하며 자연스럽게 과제를 부여받아 모험을 떠나는 구성을 선보인다.

‘종착역’ 스틸컷 / 필름다빈

다만 남학생=동적, 여학생=정적 이라는 성차별적인 발상에 빠지는 걸 경계하기 위한 장치를 영리하게 넣으며 영화 그 자체의 감성에 온전히 빠지게 만든다. 그 장치가 바로 필름카메라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필름카메라를 주며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고 말한다. 필름카메라는 요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날로그의 감성이 강하다. 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영화 중간 중간에 활용하며 감성을 극대화시킨다.

필름 카메라의 등장이 자연스러운 건 사진동아리에서 흑백영화를 보여주는 장면 덕이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영화 대신 흑백영화를 보여준다는 점은 그 의미를 상기하게 만든다. 흑백영화는 추억의 가치를 보여준다. 추억은 역과 같다. 다시 돌아올 수는 있지만 시간이 흘러 나도 장소도 변했기에 예전의 감성을 느낄 수 없다. 허나 그 순간을 다시 돌이켜볼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흑백영화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영화는 이 가치 있는 추억과 같다. 아이들은 필름카메라로 자신들의 시간과 장소를 추억으로 남김으로 그때만의 기억과 감정을 간직하게 된다. 그것이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방문한 신창역이 인생 한 챕터의 시작이자 끝인 종착역이 되는 이유이다. 올해 가장 시적이고 섬세한 이 영화는 인생의 지난 순간을 필름처럼 늘여놓고 감상하고 싶은 마법을 선보일 것이다. 9월 23일 개봉예정.

現 키노라이츠 편집장
前 씨네리와인드 편집장
前 루나글로벌스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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