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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양> 인간 대신 기억한 로봇이 남긴 것

<애프터 양>은 근미래 문화 테크라 불리는 안드로이드의 작동이 멈추면서 시작되는 영화다. 영화는 건축물과 심상을 유려한 미장센으로 담은 데뷔작 <콜럼버스>와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로 주목받은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한국계 미국인 저스틴 H. 민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화제였다.

안드로이드 ‘양(저스틴 H. 민)’은 아시안 아메리칸 버전으로 문화와 언어 배움 도우미 로봇이다. 입양한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의 오빠이자 아시아 정체성을 배우기 위해 구입했지만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실질적인 가장인 엄마 키라(조디 터너 스미스)를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키라는 처음에 양의 작동이 멈추었을 때는 그저 수명이 다한 기계쯤으로 생각했었지만 미카의 상실감이 커지자 동요된다.

아빠 제이크(콜린 파렐)는 리퍼 제품을 구매한 탓에 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한다. 보증서는 있지만 본사로 가져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어렵사리 한 업체를 만나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양은 다른 안드로이드와 다르게 기억장치가 있었다는 것. 이를 노리는 본사와 기증을 바라는 단체가 등장해 어째야 할지 갈등하게 된다.

근미래 가족과 정체성에 대해

인트로 가족 댄스대회 속 모습을 보면 다채롭다. 어쩌면 미래 모습이라 상상할 만한 다문화 가정이다. 동양인 오빠 역할을 했던 양은 동생 미카에게 나무 접목의 개념을 빗대어 입양을 설명한다. 다른 나무를 떼어다가 이 나무에 붙여 서로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다. 생김새나 피부색이 달라도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양은 미카의 입양처럼 인간과 로봇을 연결해 주는 접목의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양(기계)의 눈으로 인간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한 가족의 일상을 덤덤하게 따라가면서도 특정한 순간 들어오는 영감, 환희, 슬픔이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되어 있다.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 《양과의 작별》을 원작으로 한다. 영상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코고나다 감독은 평범한 일상에 깃든 진실을 소설에서 발견했고 이끌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뿌리에 천착하는 감독의 정체성과 의도가 곳곳에 나타난다.

안드로이드가 주체가 되어 사고하고 기억하는 이야기가 아닌,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물론 이 작업은 양의 기억을 보게 되는 제이크와 키라를 넘어 관객에게로 전이되는데, 끝을 알 수 없는 심오한 깊이감이 느껴진다. 양이 만났거나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보며 우리의 관계도 곱씹게 된다. 결국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다 나를 발견하는 기묘한 경험이 주된 이야기다.

때문에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동경한다는 전형적인 화두를 꺼내면서도 유연하게 비껴간다.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 했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다만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깨고 뿌리(정체성)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룰 것임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안드로이드를 통해 오히려 인간성과 사회성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망각으로 사라진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왜곡된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은 추억이 되고 어떤 기억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망각이 된다. 누군가와 공유한 상황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며 그로 인해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영화 초반 소원했던 미카와 아빠의 관계는 양의 기억으로 해소된다. 앞서 말한 접목의 마법이 또다시 발휘되는 시점이다.

양은 미카네 가족 이전부터 봐왔던 시각의 단편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었다. 햇살의 따사로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가족사진을 찍을 때의 설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오후의 그림자, 차가 우러나오는 순간,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공연장의 분위기 등. 이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그저 인간의 무의미한 일상이다. 특정한 의도나 메시지가 있다기보다 유와 무의 공허함과 인간 불완전함이 담긴 평범한 일생이다. 특별함 없던 오늘의 기억은 훗날 추억으로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느리고 서정적이며 시적이다. 무엇보다 뛰어난 아름다움이 깃든 미장센과 자연 친화적인 배경이 인상적이다. 차(茶)에 담긴 향, 장소, 시간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겹쳐있는 이야기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처럼 일상을 쫓아가다 사려 깊은 삶의 통찰을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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