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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마더스> 여성이자 어머니였던 평행선 위의 인생과 역사

전작 <페인 앤 글로리>를 통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했던 거장과 벌써 8번째 만남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호흡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강렬한 원색의 감각적인 미장센과 대담한 연출이 돋보인다. 아기방까지도 신경 쓴 인테리어, 가구와 소품, 패션까지도 조화롭다. 마치 현대 미술관을 옮겨 놓은 듯하면서 포스터마저도 그의 영화라는 인장이 확실하다.

뒤바뀐 아이로 시작된 연대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딸아이를 낳은 두 여성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아나(밀레나 스밋)사이의 기묘한 운명의 실타래를 담고 있다. 뒤바뀐 아이라는 통속적 주제, 비밀과 진실 앞에서 거장은 따뜻한 시선을 선보인다. 대충의 줄거리만 들으면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충분하다. 친자확인부터 시작해 아이를 두고 뺏고 빼앗으려는 암투가 떠오른다. 다소 뻔하게 흘러가리라 예상되지만 전혀 다른 전개로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사진작가인 야니스는 작업 중 만난 역사학자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할데)와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혼란스럽다. 하지만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자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비록 결혼하지 않았으나 마흔 가까이에 만난 삶의 축복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투로는 아픈 아내가 있는 가정 있는 남자이자 중요한 문제를 풀어 줄 열쇠다. 그래서 사랑에 빠졌지만 질척거리지 않기로 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그랬듯이, 집안 전통인 싱글맘이 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반면, 아나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민 끝에 출산을 결심한 십 대 소녀다. 어릴 적 배우를 꿈꾸던 엄마 테레사(아이타나 산체스 지욘)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찾지 못한 채 자랐다. 그래서일까. 더욱 아이를 사랑으로 키울 거라며 선언 같은 결심을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을 맛본다. 급기야 도와주겠다던 엄마는 뒤늦은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방으로 공연을 떠나버리고 없다. 결국 혼자서 육아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평행선 위의 두 여성의 삶

영화는 스페인 내전과 여성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거시적으로는 비극이지만 미시적으로 희극이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야니스 증조부의 실종과 진실, 대대손손 미혼모였던 집안 내력이 긍정적으로 다뤄진다. 두 여성만이 주인공인 건 아니다. 모성보다 일을 택했던 테레사의 이야기를 넣어 일하는 여성과 어머니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고 함께하는 여정이라 생각했다.

가족 이야기는 곧 여성 이야기로 변주된다. 엄마가 누구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아버지, 아들, 남편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바뀌고 내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든 짐을 지고 가겠다는 다짐은 결연하기까지 하다. 불륜, 성범죄 등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주체적인 여성에게 투영해 진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도 가졌다.

진실된 위로와 화해모드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결합했다. 내내 출생의 비밀을 감추던 야니스가 모두 쏟아내며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장면은 갈림길이 결국 하나로 만나면서 개인, 국가, 영화의 완성도까지 드높인다.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야기가 하모니를 이루는 거장의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삶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과 모성, 뿌리라는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여성 서사의 완벽함을 선보인다.

123분 동안 긴 이야기의 대단원은 단연코 묻혀 있던 증조부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장면이다. 이는 1936년부터 39년까지 있었던 스페인 내전에 비극의 역사를 어루만지는 손길과도 같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이라 독립적인 단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흔과 프랑코 정권을 비판하고 과거의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보라며 호통치기도 한다. ‘침묵의 역사란 없다. 그들이 아무리 태워버리고 아무리 부서뜨리고 아무리 거짓말한다 해도, 인류는 침묵하지 않는다.’라는 에드아르도 갈레아노의 말을 직접적으로 인용해 선보인다. 바다 건너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과 대한민국의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를 떠올려보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한편, 이 영화를 통해 페넬로페 크루즈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가 좋았다면 4대에 걸친 모계 가족의 삶을 그린 페미니즘적 서사인 <안토니아스라인>도 함께 관람해 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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