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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엄마를 때려 100m 이내 접근 금지 받은 딸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가족이 모인 안락한 집은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아수라장이 된다. 충격적이게도 딸 마르가레트(스테파니 블렁슈)가 엄마 크리스티나(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의 뺨을 무참히 때렸던 것. 모두가 이성을 잃어버렸고 이내 경찰이 출동해 가까스로 상황이 종료될 수 있었다.

결국 100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마르가레트는 닿을 듯 말 듯, 집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애증의 마음이었을까, 관심 받고싶은 아우성이었을까.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했지만 계속 맴도는 또 다른 이유는 12살밖에 되지 않은 막내 마리옹(엘리 스파그놀로) 때문이기도 했다.

뒤틀린 모녀 사이, 선 넘은 가족

엄마는 예술가였다. 세 딸도 음악적인 소질을 물려받았다. 그중 장녀 마르가레트는 음악가 DNA를 가장 많이 가졌다. 엄마는 그런 딸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내심 두려워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혈질 기질은 부모라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철없고 히스테릭한 데 자존감도 높은 엄마. 보살핌이 절실한 막내 앞에서도 자기 삶이 우선이었다. 이런 엄마의 피해망상은 고스란히 세 자매에게 투영되었다.

마르가레트는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다. 과격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한없이 여린 마음을 가져 연민을 부른다. 말보다 주먹이 앞선 성격은 어쩌면 엄마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 같은 동생 마리옹을 끔찍하게 아낀다. 천식을 앓고 있어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자유분방한 엄마가 수시로 애인을 바꿀 때마다 마리옹이 받을 혼란을 잘 알기에 더욱 안쓰러웠다. 그래서 며칠 앞으로 돌아온 크리스마스 공연 연습을 기꺼이 돕기로 했다. 쉽게 접근할 수 없기에 집과 100m 떨어진 야외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한편, 엄마와 언니를 동시에 사랑하고픈 소녀 마리옹은 거리를 두고 둘 다 지켜내려 고군분투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마리옹은 모녀간 말 못 할 애증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사랑하지만 죽도록 밉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싸웠는데, 화가 식으면 생각나는 지긋지긋한 가족 말이다.

어느 집구석의 고만고만한 풍경

<라인> 모녀의 사이를 제대로 포착한 영화다. 위르실라 메이 감독이 전작부터 꾸준히 다룬 섬세한 관계의 균형이 절정을 이룬다. 잘나가는 솔리스트였지만 마르가레트를 낳은 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삶과 그로 인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딸. 둘 다 충분히 공감되도록 설계했다. 어느 한쪽을 편들기보다 객관적 시선으로 탐구한다. 가까운 존재라는 이유로 쉽게 생채기 내버리는 가장 중요한 존재를 잊지 말길 바라는 시선이다.

서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애증을 가진 두 여성의 캐릭터가 영화의 가장 큰 인상이다. 딸을 연기한 극작가이자 가수, 배우인 ‘스테파니 블렁슈’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강력한 캐릭터를 맡아 여운을 남긴다. 중성적인 매력과 우아한 보이스, 넘치는 활력이 어우러져, 어딘가에 숨 쉬고 있을법한 실존 인물처럼 자연스러워 놀랍다. 엄마 역을 맡은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는 프랑소와 오종 감독과 자주 협업한 베테랑 배우로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엄마 크리스티나를 맞춤옷처럼 소화했다.

제목이자 또 다른 주인공, 메시지인 ‘선(라인)’은 다양한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족이지만 지켜야 할 도리와 존엄을 뜻하기도 하고, 다가설 수 없는 법적 효력의 거리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감독은 복잡하고 다양한 모녀 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이는 위르실라 메이 감독의 전작 <홈>, <시스터>부터 해왔던 가족, 자매, 모녀, 남매 이야기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폭력의 이유를 찾기보다, 꼬여버린 관계를 풀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경계를 인위적으로 두자 가까이에서 봤을 때와 멀리서 봤을 때의 차이점을 확연히 드러난다. 철부지 엄마, 폭력적인 딸, 결혼해 출가한 딸, 종교로 도피한 딸. 뒤틀린 관계는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와해되고 봉합된다. 특히 서양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했서인지, 우리나라의 명절 때 분위기와 다르지 않아 은근한 동질감도 생긴다.

2023년 가장 뜨겁고 극적인 가족이다. 지난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관찰할 수 있던 선 넘은 모녀 관계. 이를 뛰어넘는 끔찍하면서도 애틋한 가족을 만나 볼 수 있다. 물리적 폭력만이 상처를 내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정서적 학대, 언어폭력은 쉬이 아물지 않아 더 아프다. 가족이라도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해야 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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