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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운드> 살짝 취해서 보면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다

한국에 [술꾼도시여자들]의 세 여성이 있다면 덴마크엔 네 아저씨가 있다. 영화 보는 내내 술 냄새가 스크린을 뚫고 진동하는데 함께 취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 아저씨들 생각보다 주사도 봐줄만했다. 직업이 교사라서인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고 적정선을 지키는 듯 했다. 분명 곤드레 만드레인데 귀여울 정도였기에 문득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뭐든 즐기면서 하기가 어렵지, 경계를 넘는 순간 나락으로 추락하고야 만다. 술 마시면 평상시와 다른 기분과 능력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선을 조절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술을 잘 못 마시기 때문일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나름대로 카페인에 대입해 보기로 했다. 인간은 정령 술에 의지해야만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는 말인가. 그저 술을 즐기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가 부럽기만 할 뿐이었다. 대체 언제쯤 술이 맛있어지려나 싶었다.

메마른 열정에 촉촉한 술 붓기

중년의 교사인 네 친구는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 음악, 체육, 심리학을 가르친다. 전도유망했던 청춘, 꿈 많던 20대의 혈기 왕성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무기력한 학생과 시간 죽이기 싸움이라도 하는 듯하다. 열정이 빠져나가 가죽만 남아 있는 마흔이란 나이를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권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날 흥미로운 실험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의 40번째 생일날 나눈 이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라는 노르웨이 정신과 의사 핀 스코르데루의 가설은 진짜일까?

네 사람은 마르틴(매즈 미켈슨)을 첫 주자로 연구에 돌입한다. 그 결과, 놀랍도록 수업은 재미있어지고 아이들의 집중력도 높아졌다. 최악의 선생님에서 인싸 선생님으로 단숨에 랭킹까지 상승. 삶의 활력까지 되찾아 고질적이던 허리 통증도 사라진 것만 같았다. 소원했던 아내와 아들과의 관계도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실로 알코올이 준 효과는 놀라웠다.

이런 게 바로 훨 휠 나는 가벼운 기분이랄까. 이에 토미(토마스 보 라슨), 피터(라스 란데), 니콜라이까지 실험체가 되길 희망한다. 단, 규칙을 정한다. 평일 오후 8시까지만, 근무시간에만 주말에는 금주, 0.05%(0.5/mg)를 유지할 것! 알코올 섭취 후 느긋해지거나 침착해지거나 개방적이거나 대담해지는 경향은 각자의 몫이었다. 어느 정도 조절하면 되고 서로서로 체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을 통제하는 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그럼, 세상에 알코올 중독자는 없게?

자신감을 얻은 친구들은 알코올 농도를 올려 다음 단계에 돌입했다. 각자 최대의 직업적, 사회적 성취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윈스턴 처칠,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애주가였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국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필름이 끊길 때까지. 끝까지 가보자고 다짐하며 부어라 마셔라 술판을 벌였다가 진짜 큰일이 생겨 버린다.

술과 인생을 향한 예찬

<어나더 라운드>는 알코올과 일탈이 인생의 윤활유가 될 수도, 망칠 수도 있음을 유쾌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아침부터 시작해 저녁까지 늘 취한 상태를 유지하자 문제가 발생한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어 있었다. 서서히 일과 가족 사이에 균열이 생기며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네 친구는 애써 외면했던 진실과 대면하며 소중한 것을 찾아 나서기에 돌입한다.

라스 폰 트리에,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과 덴마크를 대표하는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인 토마스 빈터버그는 <더 헌트>이후 매즈 미켈슨과 뭉쳐 <어나더 라운드>를 만들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다.

이때 딸을 향한 헌사의 말로 뭉클함을 자아냈다.”이다, 방금 기적이 일어났어. 어디선가 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상은 너를 위한 상이란다” 딸은 촬영 4일째 되던 날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각본 수정에 영향을 미쳤다. 학교를 좋아했던 딸의 학교에서 촬영했고 학생들도 대부분 딸의 친구였다.

사실은 감독의 딸이 들려준 덴마크 학생의 술 문화에서 착안했다. 초기에는 세계 인류사를 변화시킨 술의 찬가 정도였던 설정이 딸과 함께 하면서 바뀌었다. 술로 인해 인생을 되찾아가는 보편적인 이야기이자 세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윤리성과 도덕성을 누군가를 재단하려 하지 않고 흘러가 듯 내버려 두며 질문을 던진다. 술에 취해 춤으로 세상과 대화를 나누는 마르틴의 마지막 선택처럼. 인생에서 지나가 버린 것(젊음) 놓친 것(관계), 잃어버린 것(열정)이 무엇인지 돌이켜 보길 응원하고 있다.

여담으로 <더 헌트> 이후 또다시 교사가 된 매즈 미켈슨은 역시나 섹시한 미중년의 풍모를 마음껏 풍겼다. 젊은 시절 기계체조를 배우고 무용수로 활동하던 경력을 발휘해 결말부 즉흥적인 재즈 발레를 선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세 번째 합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덴마크 영화는 역시나 클리셰가 없어서 기대하게 만든다. 이를 입증하듯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리메이크를 확정했고 제작과 주연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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