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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청바지] 마냥 웃을수만은 없는 씁쓸한 사연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도 질기고 패셔너블한 청바지는 젊음의 표상으로 오랫동안 대중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벌쯤 소장하고 있는 청바지가 갑자기 나를 위협한다면 어떨까? <살인 청바지>는 노동 윤리를 철저히 지키고, 공정무역과 유기농 원료만 취급하는 캐나다의 의류기업의 추악한 진실에 관한 영화다. 소비자가 옷을 사면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강령으로 사랑받는 의류기업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이 회사에 새롭게 취직하게 된 리비는 그동안 좋아했던 브랜드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당장 몇 시간 뒤로 찾아올 미친 월요일(신상품 출시와 세일)을 앞두고 분주한 팀에 합류해 어설프지만 업무를 익혀나간다. 이날은 회사에서는 청바지 ‘슈퍼 셰이퍼’ 론칭을 앞두고 있었는데, 사전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직원만 남기도 매장은 철저히 다음 날까지 봉쇄된다.

슈퍼 셰이퍼는 입기만 하면 신체 치수에 꼭 맞춤 설정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핏을 만들 수 있는 꿈의 청바지다. 하지만 출시 전날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청바지에 손 덴 직원 하나가 유혈이 낭자한 채 발견되고, 이후 청바지를 입은 직원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며 공포심을 유발한다. 자아를 가진 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살인 청바지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아름다움과 동안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청바지에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착한 기업과 윤리 소비자라는 착각

영화 <살인 청바지> 스틸컷

의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청바지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청바지는 목화에서 얻어낸 섬유인 면직물에 파란색 인디고(indigo) 염료로 착.탈색 반복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약품을 바르거나 여러 차례 빨고 긁는 워싱 공정을 거쳐 원하는 청바지로 환골탈태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데 드는 물은 약 7,000L가 들어간다. 이는 3-4인 가족 기준으로 5-6일 사용 가능한 양이다. 세일까지 더하면 한 번에 3만 원 내외로 살 수 있는 청바지를 살 때 한 번 더 고려해 봐야 하는 이유다.

친숙하고도 일상적인 청바지가 위협해 온다는 설정이 엉뚱하면서도 섬뜩하다. 청바지는 마치 ‘빨간 구두’처럼 착용하는 순간 본인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며 당황케 한다. ‘살인 청바지’의 괴담을 적절히 활용한 B급 무비다. 77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 동안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영화는 은유나 예술적인 미장센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저 직설적인 이미지와 대사의 캠페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감독이 말하려는 주제가 명확히 전달된다. 슬래셔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지만 공정무역, 아웃소싱, 유전자 조작, 저임금 어린이 노동착취, 환경오염 등의 묵직한 소재를 품고 있다. 착한 기업이 만든 착한 소비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라며 소비를 부추기던 기업의 이중적인 태도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소비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끊임없이 새 상품을 사도록 부추기는 대기업의 횡포를 꼬집는다.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마법에 걸린 듯 충동구매를 서슴지 않는 현대인의 채워지지 않는 소비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전략까지 까발린다. 내가 산 물건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내 손으로 들어오는지 불편한 진실을 알고도 또다시 소비의 늪에 빠지는 이유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맞춰 싼값에 판매되고 금방 버려지는 패스트패션을 향한 날 선 비판도 느껴진다. 청바지를 소재로 했을 뿐, 다른 상품으로 대체해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 의식이 몰랐던 이면의 진실까지 끌어 낸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점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에 있지 않다. 신상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새벽부터 매장 앞에 긴 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장관에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밤새 잠겨 있던 문이 열리자마자 먼저 들어오려는 흥분한 얼굴이었다. ‘블랙 프라이데이’에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기 어린 모습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어 씁쓸함을 유발하면서도 과소비를 반성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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