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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느망] 시대에서 발견한 여성의 몸과 억압 그리고 폭력

<레벤느망> 스틸컷 / (주)왓챠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유년시절, 부모, 사랑 등등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철저하게 해부하며 그 늪에 독자를 빠뜨린다. 개인의 내면을 세세하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영상화가 쉽지 않음에도 그 정서를 스크린에 옮기고자 도전하는 감독들이 있다. 오드리 디완도 그 중 한 명이다. <레벤느망>은 국내에서 <사건>이란 제목으로 발간된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작품은 1964년 작가가 임신중절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아니 에르노는 이 이야기를 35년이 지난 1999년에 글로 쓰게 된다. 그 이유는 1975년 합법화가 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낙태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합법화 이전까지 프랑스에서는 매년 250여 명의 여성들이 불법 임신중절로 사망했다고 한다. 여기에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임신한 여성은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아니 에르노의 이름을 가져온 주인공 안은 아니 에르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부모와의 갈등, 타고난 신분에 대한 고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부라는 노력 등이 담긴 캐릭터다. 대학에서 학위 준비를 하던 안은 딱 하룻밤을 나눈 상대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된다. 결혼과 연애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안은 아이를 지우려고 하나 불법이기에 나서는 의사들이 없다. 대학 내에서는 안처럼 임신을 해 학업을 포기한 여자들이 있다.

<레벤느망> 스틸컷 / (주)왓챠

낙태가 불법이라는 점과 임신중절을 시도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루마니아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연관성을 지닌다. 이 작품은 독재정권 당시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된 루마니아에서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계획하는 과정을 스릴러의 문법으로 보여준다. <레벤느망>은 심리적인 스릴러를 정적으로 가져온다. 같은 배경이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심리적인 긴장감을 유발해내는 방법은 몸에 있다.

임신중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기 힘든 환경에서 안은 두 가지 장면을 반복한다. 의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점점 변하는 몸을 바라만 보는 것이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배는 불러오며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꿈이 멀어지는 장면들을 반복해 보여주는 것만으로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이는 한 여성의 삶이 다음 장면 어느 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에서 비롯된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외부적인 상황에 갇힌 인물들을 통해 스릴러의 문법을 만든다면 <레벤느망>은 내부적인 변화를 통해 심리적인 긴장감을 유발해낸다. 이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 지닌 감정과 생각의 요소들을 스크린에 펼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흥미로운 점은 외부적인 요소들에 시대상을 담아내며 시대의 폭력이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고 고통을 주는지를 조명했다는 점이다.

<레벤느망> 스틸컷 / (주)왓챠

사랑과 성적인 욕망을 보편적인 감정으로 그리며 이에 대한 책임의 결과를 여성에게만 짊어지게 했던 시대상을 꼬집는다. 이 유려한 표현이 가능했던 건 원작의 힘도 있지만 1988년 작품인 <여자 이야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패배의식에 빠진 남성들과 이들에게 억압과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 역시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소재로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가고자 한 안의 결심은 몸의 변화에서 온다. 여성에 대한 억압의 역사는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 고대에는 월경과 오로를 근거로 여성의 몸을 폄하하였고, 중세의 마녀사냥은 남성보다 더 오래 사는 여성의 늙은 외모에 대한 혐오가 이유 중 하나였다.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은 신체에 대한 억압과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에르노의 <사건>에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임신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작가가 이 사실을 세상에 꺼내놓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시대가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는 개인이 시대의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는 한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스크린에 구현하며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現 키노라이츠 편집장
前 씨네리와인드 편집장
前 루나글로벌스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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