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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진실이 비로소 의미를 얻을 때

전설적인 <에이리언> 시리즈, <델마와 루이스> 등의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중세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만들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로, 한 기사의 아내가 남편의 친구로부터 강간을 당한 사건을 다룬다.

실화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주요 인물 세 명의 관계성과 캐릭터가 상당히 촘촘히 세팅되어 있었다. 중심이 되는 것은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과 그의 친구인 자크 르 그리(아담 드라이버)인데, 모든 현실적인 관계가 그러하듯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다. 자크 르 그리는 백작인 피에르 달랑송(벤 애플랙)의 총애를 받는 인물로, 행동을 살펴보면 계산적이고 약삭빠르며 철저한 인물이다. 반면, 장 드 카루주는 정의롭고 진솔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무식하고 처세를 잘 못하여 윗사람의 눈에 들지 못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러한 속성을 두 인물이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을 물려받을 영주를 결정한다든가, 세금을 징수하는 등의 상황이 장에게는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 배후에는 자크 르 그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두 사람의 관계는 질투와 증오 위에 포장된 우정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보기에도 팽팽하고 긴장감 넘치는 자크와 장의 관계성에 사건이 더해진다. 장이 집을 비운 사이 자크가 장의 아내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를 겁탈한 것. 영화는 이 사건에 대한 세 사람의 입장을 차례로 묘사한다. 3장 구성으로 ‘장 드 카루주가 말하는 진실’, ‘자크 르 그리가 말하는 진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이다. 1장을 펼치기 전에, 영화에서는 결투가 펼쳐지는 날을 먼저 보여준 뒤, 세 사람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스토리를 통해 과거부터 다시 결투의 날로 돌아온다. 즉, 시간의 경과 없이 첫 장면으로 돌아오는 영화라는 뜻이다.

각 장이 전개됨에 따라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기도 하고,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었던 개인적인 감정에 관한 장면들이 더해지기도 한다. 세 개의 장에서 전부 등장하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서술하는 사람의 입장이 모두 다르기에, 묘사가 달라진다. 리들리 스콧은 영화적인 연출의 진가를 이 타이밍에 발휘한다. 특히, 장과 자크의 에피소드에서는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엇갈리는 과정이 드러났다면, 마지막 장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이 밝혀지면서부터는 문제가 된 강간 사건을 둘러싸고 각자가 왜곡하여 받아들인 진실이 등장한다. 사소한 몸짓 하나부터 누가 어떤 말을 뱉었는지 등이 세 사람 각각의 기억에 따라 모두 다르다. 관객들은 마르그리트의 입장을 보게 되는 순간, 앞선 두 인물이 해당 장면을 어떻게 묘사했는지가 떠오르며 차이점을 바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메시지는 단연 ‘진실’이다. 각 장의 제목에도 들어있고, 엔딩에서 장과 자크가 결투를 벌이는 이유 역시 진실을 밝혀내 명예를 되찾고자 함이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면, 이 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진실을 결투로 쟁취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마지막 결투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인데, 인물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신’이 진실의 편을 들어줄 것이며, 그 자가 결투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진실과는 전혀 관계없이, 결투에서 이기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피해자인 마르그리트 역시 터무니없이 무거운 담보를 저당잡힌다. 만약 남편이 결투에서 진다면 화형에 처할 것. 그녀는 자신이 갓 낳은 아이를 두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 분노한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애초에 이 영화에 진실이 존재했던 것인지 의심이 된다. 진실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진실이 있다면 그건 서술되기보다는 가만히 존재하는 팩트에 지나지 않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러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는 처음부터 사건의 당사자들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제목을 내걸었고, 진실이 과연 세 사람의 이야기 중 어느 쪽일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굿 윌 헌팅>의 각본으로 할리우드의 사랑을 받았던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무려 24년 만에 각본 작업에 다시 함께 참여했다. 또한, 조디 코머라는 혜성 같은 연기파 배우의 등장으로 영화의 깊이가 깊어졌다. 특히 조디 코머는 같은 장면을 각각 다른 세 가지의 감정선으로, 대사의 타이밍이나 톤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확실히 구분시켜주며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낙원과 진실에 관해 탐구하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계관을 이어받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글: 키노라이츠 손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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