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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오더] 무질서와 새질서는 한 끗 차이

부의 불평등은 세계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세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더 이상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계층, 인종 차별에 따른 갈등은 빈번히 일어나며, 언제 터져도 이상할게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안전한 걸까.

멕시코 상류층의 호화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고급 저택에 속속들이 도착하는 귀빈과 파티가 한창인 정신없는 상황. 이와는 대조적으로 집 밖에서는 빈민층의 폭력 시위가 한창이었다. 두 사건은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서서히 분위기를 잠식한다.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고, 터질 것만 같은데 실체를 모르겠는 공포가 드리운다.

이런 와중에 오늘의 주인공이자 신부인 마리안(나이안 곤잘레스 노르빈드) 앞에 7년 전 집사였던 롤란도가 찾아온다. 그는 아내 엘리사가 수술을 받아야 할 위급한 상황이란 사실과 함께 당장 돈이 없다는 말을 하고, 이에 마리안은 몹시 흔들린다. 결국 유모였던 엘리사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크리스티안과 집을 나선 마리안. 하지만 위험한 거리로 나선 선의는 오히려 충격적인 사건의 도화선이 되어 버린다.

즐거운 결혼식장 분위기와 달리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집 밖. 점차 포위망을 좁혀 온 시위대는 결혼식장까지 습격해왔다. 그것도 모자라 하인까지 가세해 한 집안은 순식간에 풍비박산 나 버린다. 그동안 상류 계급에 강한 불만을 느끼고 있던 하층민은 돈과 보석, 명품 등을 쓸어 담고 마구잡이로 총을 쏘며 살인까지 저지른다.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은 계속되고 흥겨웠던 결혼식은 곧 슬픔이 잠식한 장례식이 되어버린다.

한편, 계속되는 시위대의 폭력에 속수무책이던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는다. 남은 가족들은 마리안의 생사도 모른 채 교착상태에 빠져있었고 그녀를 찾기 위해 돈과 권력을 모두 동원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 시각 크리스티안은 동태를 살피려고 나갔다가 군인들에게 발각되고 할 수 없이 군인들에게 마리안을 보낸다. 그들은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고 했으나 마리안을 납치했고, 알 수 없는 곳에 감금한다. 마리안은 이곳에서 인권 유린과 성폭행, 폭언, 폭력을 당한다. 무자비함이 만연한 곳에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라 공포에 휩싸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과연 마리안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멕시코로 옮긴 ‘기생충’ 확장판

칸의 총아로 불리는 미셸 프랑코 감독은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또다시 입지를 다졌다. 미셸 프랑코는 영화마다 날 선 시각으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감독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그 영역을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자국(멕시코)의 계급사회로 확장하고 나섰다. 때문에 이 영화를 86분 동안 본다는 행위는 스스로 지옥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는다면 충격과 공포의 러닝타임에 잠식당하는 불편한 시선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동안 계급사회의 전복과 새 질서는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익숙한 소재지만 미셸 프랑코 감독은 초록과 빨강의 보색대비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빨강과 녹색 하면 즉각 떠오르는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이 영화 속엔 없다. 흡사 전쟁의 참상, 지옥을 생중계로 관망하고 있는 듯 사회 전역이 무질서로 가득하다.

오랫동안 핍박받은 시위대는 녹색 페인트를 뿌려대며 폭력으로 앙갚음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혼돈 속 마리안은 순백의 웨딩드레스 대신 빨간색 정장을 입어 군중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띈다. 마치 <쉰들러 리스트> 속 흑백 대학살 장면 중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의 또렷한 희망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더욱 처연하고 안타까움이 커진다.

영화 속 대혼란은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떠오르게 한다. 우유 속 마약 성분에 따라 점차 잔혹하게 변하는 주인공의 심리와 커지는 폭력성이 닮아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뒤집힌 문자를 통해 3차대전의 촉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상의 질서를 새로 확립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지배계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만 바뀌어 또 다른 착취 대상을 찾을 뿐이다.

여기에 <뉴 오더>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섣불리 결말을 떠올릴 수도 없게 만든다. 클리셰라는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 예측불허 전개는 빠른 템포, 강렬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선의와 악의,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없으며 모두가 피해자임을 암시한다.

이런 혼란의 세상이 오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슨 노력이 필요할지 질문을 던지는 영화임이 틀림없다. 영화만 봤을 뿐인데 목덜미가 서늘, 머리가 지끈거린다. 새로운 질서를 말하지만 혼돈 자체의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과 쉽게 진정되지 않는 마음이 요동친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심장을 강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그 경고를 무시한다면 훗날 영화 속 상황이 재현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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