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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현실을 겨냥한 영화의 예리함과 따뜻함

누구보다 영화를 아끼는 ‘키노라이터’들에게 이번 주, 화제의 영화는 뭘까요? 가벼운 감상부터 깊은 비평까지 다양한 글들이 키노라이츠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비평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더 풍성하게 해준 키노라이터들의 글을 볼 수 있는 시간, 키노라이츠‘s Pick! 지금 시작합니다.


자신의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다는 소년의 이야기 <가버나움>을 향한 키노라이터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61명의 평가 인원 중 무려 59명이 초록불을 밝혀주셨고, 현재 키노라이츠 지수는 96.7%를 기록 중이며 평점도 4.17점으로 매우 높습니다. <가버나움>은 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으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국내에서는 <버닝>과 황금종려상 후보로 함께 언급되기도 했죠. 그 외에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 등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끌어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키노라이터들은 <가버나움>을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글의 맞춤법을 일부 손봤으며, 방대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어 일부 생략한 부분도 있습니다. 리뷰의 전문은 키노라이터의 아이디에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확한 플롯이 존재하고, 어떠한 은유도 비유도 시적인 분위기도 없으며, 소름 끼치는 사실감이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자인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와 부당한 사회 시스템, 책임감이 1도 없는 부모를 부각하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나갑니다. 자인을 제외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점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자인에게만 집중함으로써 영화의 메시지는 더 확실해진 느낌입니다.

– 시네마 오네스트 님의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웃음” 중(초록, 4점)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전개 방식과 카소비츠의 <증오>의 에너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 영화의 리얼리즘은 시대와 시대에 연결된 역사적 맥락들이 아니라 계급을 탈출할 수 없는 가난의 지옥을 그대로 겨냥하지만, 끝내 그것에 승리하지 못한다. 가버나움의 휴전상태는 ‘기적’이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비극이다.

– 김경수 님의 “영화와 정치, 그 사이에서” 중(초록, 3.5점)
딱여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를 스스로 처단하고, 자신의 부모를 소송함으로써 부모 노릇은 안 하면서 무작정 아이만 낳는 어른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준 자인은 그 자체로 한 줄기의 빛이며 기적입니다. 마지막 씬에서야 비로소 미소 짓는 자인은 정말이지 ‘아름답습니다’. 이 미소 하나 보자고 120분을 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글꾸니 님의 “다큐 같은 극영화” 중(초록, 5점)
단순히 아이의 연기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눈빛만 봐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연기이기 이전에 실제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신파와 억지 눈물이 아니라 현실을 묵묵히 담아낸 감독에게 감사하다. 좋은 영화는 이런 거다.

– 몽쭝 님의 리뷰 중(초록, 3.5점)


사실적인 카메라의 시선에 관해 언급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참혹한 현실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냈고, 주인공의 상황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하죠. 나딘 나라키 감독이 택한 연출 방법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 부조리한 세상을 담는데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전문 배우들이 <가버나움>의 캐릭터를 묘사할 수 없으리라 판단해 비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현장감을 더 강조할 수 있었죠. 뉴스와 기사로 접하던 현실을 스크린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듯한 느낌에 섬뜩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자인 역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의 연기에 감동한 분들도 많았는데요. 이 소년은 실제로 한 번도 학교에 가 본 적 없는 어려운 환경에 살았고, 영화의 캐릭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나딘 나라키 감독의 연출 아래, 자인 알 라피아는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죠. 이런 자연스러운 연출과 연기 덕에 자인 알 라피아는 인생 첫 연기로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고, 천재 아역 배우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의 미소에 마음이 움직였던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죠.


이런 호평과 달리, 예리한 비판을 남긴 키노라이터들도 있었는데요.

심히 불편한 건 이 영화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다. 따지고 보면 영화의 메시지는 법정 시퀀스에서 모두 토해진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곤에 고통받는 자인을 비추는 플래시백이 없어도 관객은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부분 다 알아차릴 수 있다. 플래시백은 잔인한 현실을 묘사하는 본래 의도를 넘어 인물을 어디까지 학대할 수 있나 과시하는 가난 전시회, 불행 전시회처럼 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인은 서사의 주체가 아니라 연민을 유발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 토비 님의 “가난을 포르노화하는 나쁜 신파극” 중(빨강, 평가 없음)
요컨대 우리가 이 영화에 대해서 물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굳이 소년을 닫힌 공간으로 밀어 넣어야 했느냐는 점이다. 그 공간에 소년을 밀어 넣고 카메라의 포착을 흘려 넣으면 참다못한 소년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이라고 영화는 믿었던 걸까.

– 숲속의참치 님의 “열린 공간의 환영” 중(빨강, 3점)
<가버나움>은 12살의 어린 소년이 부모를 고소한 사건의 발단을 풀어놓는 형식의 이야기였지만 그 과정에서 영화가 내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소년의 삶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자인의 이야기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더욱 넓은 이야기로 향하지 못했으며, 지나치게 현장 중심의 칼날 같은 이야기의 전개 때문에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의 질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물론 배우부터 시작해 다양한 방면으로 감독의 의도가 담긴 것이겠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져 아쉬움이 있었다.

– 방군 님의 “그 소년, 웃을 수 있었다” 중(초록, 4점)


앞에 언급한 카메라의 사실성을 <가버나움>의 문제점으로 지적해준 키노라이터도 있었습니다. 너무도 사실적인 카메라가 오히려 비극과 가난을 전시하고, 이를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건데요. 자인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이고 얻어낸 감정을 소비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적으로 연출된 영화이기에 이런 문제는 더 생각해볼 점이 있는데요. 영화가 담는 대상에 가지는 태도,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데서 오는 윤리성에 관해 묻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버나움> 제작진이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 및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지만, 영화는 대상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 표현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등의 문제는 한 번쯤 생각해볼 고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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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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