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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깊어만 가는 가을의 로맨틱함을 그대에게

서른 중반의 도라(비카 케레케스)는 최근 되는 일이 없어 우울하다. 3년 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지만 약혼자와 이내 결혼해 버렸다. 힘들게 그 남자와 헤어지고 시름에 빠져서일까.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없어 매일 우울해진다. 그러던 중 삶의 전부인 카페마저 경영 위기에 몰린다. 친구는 이렇게 가다가는 파산할 위기에 처한다며 조언한다. 남자친구도 떠나고 카페마저 없다면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다름없다. 도라는 카페를 꼭 지켜야만 했다.

영화배우나 유명인의 이름을 붙인 케이크가 있는 아기자기한 디저트 카페이자 영혼까지 갈아 넣은 ‘크림’. 도라는 생각 끝에 가게를 빌려주는 대가를 받기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성공. 나 아닌 누군가가 카페에 드나드는 게 탐탁지 않지만 자칭 치과 의사이자 뮤지션인 마르시(라즐로 마트라이)에게 대여해 주었다. 드디어 그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퇴실하는 날이다. 분명 파티랍시고 카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궁여지책으로 참아야만 한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라는 스타트업에게 해당되는 재정 지원 사업이 정부 지원으로 가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설명회에 참석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에게만 지원되는 사업이란 말을 듣자 풀 죽어 돌아가려던 찰나 하필이면 전 남자친구 다비드와 그의 아내와 마주친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쩐담. 전 남자친구 앞에서 보란 듯이 잘 산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라는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아이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버렸고, 재정 지원 사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뭐.. 가족이 없으면 어떤가. 지금이라도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은 거짓말로 시작된 사건의 발단이 된다. 1등만 한다면야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고도 남을 95,000 유로를 얻게 될뿐더러 바닥에 떨어진 명예도 회복할 수 있다. 게다가 전 남자친구와 아내가 1등 하게 둘 수 없다는 근거 없는 복수심마저 타오르자 오랜만에 분투하고 싶은 열정마저 생겨난다.

도라는 그 길로 부랴부랴 가족 만들기에 고군분투한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맘에 들지 않지만 치과 의사 마르시에게 남편이 되어 줄 것을, 앞집 사는 배우 지망생 라시카에게 귀여운 아들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드디어 완벽해 보이는 가족을 만든 도라는 3박 4일간의 워크숍에서 반드시 우승하자는 결의를 다진다.

자, 이제 계약 가족이 성사되었다. 가족 사업 대상 지원 대회에서 우승해 버릴 거다. 전 남자친구의 콧대를 비틀고 아내에게 복수하고 싶어 죽겠다. 과연 도라는 완벽한 빅피처를 이루어질 수 있을까. 생크림 가득 부드러운 풍미의 케이크처럼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인생은 달콤함과 쌉싸름 그 어디쯤

<크림>의 백미는 뻔하지 않은 설정, 형식을 파괴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재해석에 있다. 파리국제영화제 공식 선정작으로 앞으로 주목해야 할 여성 감독 노라 라코스가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장편 데뷔작이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느낌을 풍기며 헝가리 영화의 다양성을 주목하게 만든다. OST로 나오는 3곡이 귓가에 계속해서 맴돈다. 스웨덴의 재즈 보컬 ‘리사 엑달(Lisa Ekdahl)’의 Give Me That Slow Knowing Smile, I Know You Love Me’와 ‘Schoblocher Barbara’와 ‘Áron András’의 감미로운 듀엣 목소리가 인상적인 IF I HAVE YOU 등이 레트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도라 역을 맡은 비카 케레케스의 고전적인 매력이 현대물에서도 재현된다. 한국 관객에게는 작년 개봉한 <부다페스트 스토리>를 통해 얼굴을 알리며 동유럽의 제시카 차스테인으로 각광받았다. 그녀가 해석한 도라라는 캐릭터는 사랑스럽지만 그늘져 있는 결핍된 존재였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최선의 삶은 무엇인지, 사랑의 범위와 가치까지도 알려준다. 또한 도라의 이웃사촌 라시타는 시선을 강탈하는 귀여움으로 영화의 신 스틸러를 자처한다. 앙증맞은 외모와 시니컬한 분위기를 품고 있으며 내면의 아픔을 연기로 승화하는 천재 아티스트로 분위기를 이끈다.

첫인상이 좋지 못했던 마르시는 워크숍에 참가하며 도라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서로 목적이 있어 한 방을 쓰게 되면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서로의 진면목을 발견하기도 한다. 도라는 음악을 사랑해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디제잉까지 자처하는 치과의사 마르시를 통해 시련의 상처를 조금씩 회복한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히는 걸까. 세상일은 알 수 없다더니 도라와 마르시의 티격태격 3박 4일은 핑크빛으로 물들어 간다.

연애로 시작했지만 가족 의미에 방점을 찍는다. 비록 계약 가족으로 급조되었지만 진실한 사랑을 확인한 세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설정도 뜻깊게 다가온다. 달콤 쌉싸름한 다크초콜릿처럼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가족을 통해 날카로운 유머를 선보인다. 모두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의 이면을 들춘다.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겉으로는 모두 이상적인 가족처럼 보이지만 저마다 숨겨진 비밀과 아픔이 폭발한다. 서로 들키지 않기 위해 더 과장스럽게 연기하고 치부를 숨긴 채 즐거워 보려 애쓰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가족이란 어쩌면 피를 나누지 않아도 다양성과 상처까지도 아우른다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까지도 제시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앙증맞은 디저트다. 비비드한 색감의 카페는 멜랑꼴리해지는 가을을 로맨틱하게 수놓는다. 도라가 애착하며 만들어 내는 형형색색 디저트는 랄프 파인즈, 다이안 키튼 등 익숙한 영화배우 이름이 등장해 영화로운 순간을 제공한다.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와 로버트 레드포드, 케이트 윈슬렛과 디카프리오,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 드롱 처럼 영화 속 커플이나 실제 커플 이름에서 따왔다. 이들은 하나같이 커플이었기에 도라의 연애 전선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이스터에 그로 활용된다. 고전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 봤던 관객이라면 유추해 볼 수 있는 결말까지 상징적으로 활용한 부분이 돋보인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다면 어땠을까 괜한 상상력이 커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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