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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20세기 이루지 못했던 과업을 21세기에 실현한다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까. <듄>은 인류의 문명과는 다른 새로운 문명을 창조했다고 할 정도로 역사, 정치, 문화, 종교를 집대성한 걸작이다. 1965년 프랭크 허버트가 쓴 동명의 원작이자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영화화에 눈독 들였던 소재기도 했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꿈꾼 대형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사라져 버렸고, 데이빗 린치가 만든 1984년 작의 혹평으로 섣불리 제작으로 이어지기 힘든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비주얼리스트인 데이빗 린치는 당시 구현하기 힘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방대한 스토리와 철학적 깊이감을 2시간 내외의 러닝타임에 녹여 내기 힘들었다. 따라서 원작을 영상화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제작비와 최고의 인력, 충분한 시간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무기한 연기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20세기에는 모두가 실패했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21세기가 되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한 사람은 드니 뵐뇌브 감독이었다. 그는 이미 오랜 경력과 수상으로 할리우드의 명감독 중 하나였고, 초특급 SF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위해 여정을 마쳤다. 10대 때 읽었던 원작의 팬이기도 했으며 과학을 공부했던 그는 내심 ‘듄’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다. 허버트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재해석한 위대한 시작은 심오하고 웅장한 묵시록적 스페이스오페라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한스 짐머의 음악은 음악까지 하나의 캐릭터로 승화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며 심연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듄을 지배하기 위한 서막, 반드시 극장 관람 추천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공간을 초월한 예언자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어머니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딸을 출산해야 하지만 인류를 구원할 존재로 키우고자 아들을 출산한다. 한편, 폴은 아라키스 행성에 사는 정체불명의 여인을 꿈속에서 만나게 되고 무언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된다.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으로 불리는 아라키스는 우주의 원동력이자 환각제인 스파이스 생산지다. 스파이스는 현대로 치면 석유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라키스는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왔다.

최근 황제의 명령으로 인해 80년간 지배하고 있던 하코넨 가문이 물러나고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속박으로 고통받고 있던 원주민 프레멘은 누구의 지배도 원하지 않아 갈등을 초래한다. 이 과업을 이루고자 했던 아트레이데스의 레토 공작 (오스카 아이삭)은 모종의 음모를 느끼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다. 반드시 프레멘과 협력해 모든 것을 파괴할 우주전쟁을 막아야만 한다.

<듄>은 155분 러닝타임을 사실상 원작의 프롤로그로 만들었다. <듄>은 원작 소설(1965)과 데이빗 린치의 <사구>(1984)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극장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파트 1이라는 부제에 맞게 인물과 배경, 텍스트의 이미지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을 세심하게 설명한다. 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다. SF 영화이자 심리 스릴러 환경, 모험, 드라마, 러브스토리 등 복합장르가 담긴 종합선물세트다.

이 영화의 속성 중 하나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기술을 새롭게 시연하는 무대기도 하다. ‘듄’은 우리나라 말로 모래언덕인 사구다. 아라키스 행성의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모래언덕의 능선,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IMAX 인증 아리 알렉사 LF(Arri Alexa LF IMAX)카메라로 촬영된 첫 영화다.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로 보여줄 수 있는 시청각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폴의 환상과 꿈, 사막 장면 등 한 시간 이상의 분량이 1.43:1 풀 화면 비율로 촬영되었고 나머지는 2: 35 포맷으로 촬영했다. 따라서 <듄>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는 IMAX관에서 관람해야만 오롯이 감상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OTT와 극장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서 <듄>은 극장의 힘을 과시하는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 틀림없다.

독이 든 성배를 든 최종 승자는?

먼 미래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의 제국과 이권 다툼, 종교 전쟁으로 이어지는 대서사를 이미지로 함축한 시나리오. 텍스트에 갇혀 있던 온갖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배우의 풍부한 연기. 독이 든 성배였던 원작을 영화화한 연출가의 심도 있는 이해가 만들어 낸 시너지라 할 수 있다. 누구 하나가 잘해서라기 보다 최고가 모였을 때 일어나는 하모니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엄청난 세계관과 규모임에도 섬세함이 살아있는 캐릭터의 감정선도 충분히 느껴진다. ‘퀴사츠 해더락’이 되는 ‘폴’이 메시아나 히어로가 아닌, 정체성을 고민하는 소년이기에 어른들의 싸움에 희생당하면서도 갈등하는 내면이 티모시 샬라메의 비주얼과 연기가 완벽했다. 훗날 사막 쥐의 이름을 스스로 붙이는 ‘무앗딥’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년의 성장 스토리이자 은하계의 새로운 문명의 흥망성쇠를 조망한다. SF와 고대 시대가 합쳐 친 듯한 묘한 분위기는 반기계 운동 이후를 다뤄 흥미롭다. 인간의 정신을 본뜬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철칙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미래다. 대신 AI를 대신할 고도로 훈련받은 전략가 멘타트의 자문을 받고 베네 게세리트의 조정에 따른다. 따라서 상상할 수 없는 문명의 발전 보다 그리스 로마 문화의 전통이 돼 살아난 듯 보이는 르네상스적인 비주얼의 혼합이 매혹적이다. 영적이고 심층적인 정신력의 싸움은 중세 기독교와 불교 사상에서 차용했다. 총 대신 무술이나 칼로 싸우며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고 조정해 목적을 이루기도 한다.

또한 여성 서사를 힘준 포인트가 반갑고 앞으로가 기대된다.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하는 여성 집단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인 레이디 제시카와 대모(샬롯 램플링)의 카리스마와 능동성, 프레맨으로서 성장하는 폴을 돕고 그와 연인 사이가 되는 프레멘 ‘챠니(젠데이아)’, 황제의 명령을 따르면서도 아라키스의 중재자이자, 프레멘인 ‘카인즈 박사(샤론 던컨-브루스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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