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TVING) 오리지널, 오직 티빙에서만 일주일에 두 편씩 공개되는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이 요즘 뜨거운 인기몰이 중이다. TV 방영 드라마들이 주를 이루던 시장에 한국 OTT에서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자리 잡아간다는 신호다. 이 열풍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필자가 ‘술꾼도시여자들’을 알게 된 계기는 SNS를 떠도는 엄청난 조회수의 영상 클립이었다. 에이핑크이자 배우로도 활동 중인 정은지가 찰지게 욕을 뱉는 장면. 여태 방송에서 이렇게 리얼한 욕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충격적이면서도 재미있었다. 자연스레 ‘그래서 이게 무슨 드라만데?’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렇게 ‘술도녀’를 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술 냄새 나는’ 드라마. 주인공 세 명은 모두 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종이접기 유튜브가 본업인 강지구(정은지), 예능 방송작가 안소희(이선빈), 미녀 요가강사 한지연(한선화), 대학시절부터 오로지 ‘술’로 뭉친 이 세 명의 친구들이 일상을 살아가며 술을 곁들이는 내용이다.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직관적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시놉시스는 꽤 단순하지만 주인공 세 명의 캐릭터가 확실하고 트렌드를 반영한 대사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한 편당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덕에 쉽게 손이 간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초호화 캐스팅, 재미있는 각본을 가진 드라마는 이전에도 많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TV 드라마와 크게 다른 점, ‘술꾼도시여자들’만의 매력은 대체 뭐였을까?
1화를 보는 30분이 1분처럼 사라졌다. 캐릭터 소개 영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술도녀’는 1화를 시청자에게 각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데에 과감히 사용했다. 누구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남자가 소개팅에 나가 세 명의 도시여자들을 만나게 된다. 거의 10분씩 공평하게 분배된 시간 안에서 지구, 소희, 지연은 각각 자신의 매력과 성격을 보여준다. 이들이 서로 친구라는 것, 그리고 종목이 ‘술’이라는 것 외에는 전혀 연결점이 없지만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면 시청자는 자연히 ‘다음 화 이어보기’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다. 60분 분량의 TV 드라마에서는 이어지는 서사 없이, 유머와 캐릭터로만 채우는 1화를 내걸기가 아무래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캐릭터 설정도 주목해 볼 만하다. ‘술도녀’에는 시청자가 공감하기 쉬운 일상적인 특징과 웹드라마만의 파격적인 일탈이 공존한다. ‘드라마 같은’ 회사 생활이나 낭만적인 만남 등으로 가득 찬 대부분의 TV 드라마들과는 달리 술도녀에 나오는 인물들의 ‘현생’에는 고달프고 힘든 일이 가득하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상, 따지고 보면 이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사회생활도 쉽지 않으며, 하루의 피로를 술 한 잔에 털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구성을 공감하기 쉽도록 가져가면서, 현실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파격적인 사이다 선택지를 해답으로 제시하여 답답함을 대신 풀어준다.
<술꾼도시여자들> 스틸컷 (제공: 티빙)
술도녀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콘텐츠로, TV 방영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서사에 필요한 욕설을 삐- 소리나 묵음 처리 없이 사용하기도 하고, ‘술’이 러닝타임 내내 나온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지상파에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드라마는 존재하지만, 심야 시간대로 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누구나 볼 수 있다는 TV 매체의 특징 때문에 술이나 욕설 등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만큼 술도녀에서는 웹드라마에서만 할 수 있는 이점을 잘 녹여낸 셈이다. 기존의 드라마에 더 익숙한 누군가는 해당 드라마를 음주 문화를 장려한다며 꺼려 하기도 한다. (실제로 해당 작품에 달린 코멘트) 하지만 티빙이라는 플랫폼에서만 ‘선택적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이기에 술이 주인공인 이런 드라마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술자리를 갖는 것도 쉽지 않은 전염병의 시대에, 누군가는 술도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드라마’하면 TV에서 정해진 시간에 방영하는 60분짜리 콘텐츠를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술도녀처럼 유튜브, 티빙, 웨이브 등 TV가 아닌 곳에서 공개되는 ‘웹드라마’ 형식의 영상물들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는 중이다. 웹드라마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연애플레이리스트’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다양한 OTT 서비스에서 직접 기획하고 제작해 TV가 아닌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공개하는 형식의 드라마가 유행이다. 시간 맞춰 TV를 트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미드나 영드를 보던 방식으로 만나는 한국 드라마들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등도 웹드라마에 포함된다.
표현할 수 있는 수위나 소재가 다양하고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OTT 서비스들의 자체 제작 콘텐츠들이 더욱 기대되는 시점이다. 그런 면에서 티빙의 ‘술도녀’는 웹드라마의 장점을 백분 활용해 그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보여준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글: 키노라이츠 손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