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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돼지의 왕] 성공적인 실사화를 이뤄낸 대한민국 대표 성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스틸컷 / 티빙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던 연상호는 2016년 <부산행>의 대성공 이후 국내 장르물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OTT 플랫폼의 대중화는 ‘연상호 다시쓰기’의 바람을 가져오고 있다. 그가 단편영화와 웹툰으로 선보였던 <지옥>이 넷플릭스를 통해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연상호란 이름을 알린 첫 번째 작품으로 티빙을 통해 실사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돼지의 왕>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성인 애니메이션이다.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경민이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을 15년 만에 만나 학창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충격적인 진실을 관객에게 목도하게 만드는 구성을 취한다. 10년 전 작품임에도 현대에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아졌다는 점과 대중이 스스로를 개돼지로 인식하는 사회적 패배주의가 만연해졌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시도라 볼 수 있다.

작품은 원작의 폭력성을 담아내며 9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장편으로 제작하기 위해 장르물의 색깔을 덧칠한다. 소설가였던 종석의 직업을 형사로 바꿨고 형사 진아의 캐릭터를 더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묘미를 더했다. 경민의 캐릭터 확장은 이 작품이 가장 열과 성을 들인 부분이다. 경민이 아내를 살해하는 원작의 도입부를 가져오되 살인이 아닌 아내의 동반자살 시도와 이후 경민이 연쇄살인마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경민의 시각에서 과거의 사건을 파헤치는 원작의 시선과 달리 종석과 진아까지 세 명의 시선을 더해 다채로운 극을 형성한다. 경민이 기억하는 과거와 종석이 잊고 싶은 과거, 진아가 파헤치고자 하는 두 사람의 과거가 연결되며 그 진실에 나선으로 빠질 수 있는 복합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여기에 경민이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을 스릴러의 질감으로, 경민을 잡고자 하는 종석과 진아의 모습을 범죄 추리극의 묘미로 담아낸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의 영리한 구성은 철이의 등장시점에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 극에서 아역들의 이야기는 절반의 구성을 차지한다. 경민이 당하던 학교폭력을 종석이 구해주려 하지만 함께 피해자가 되며 답답함을 줄 때 철이가 등장한다. 학교는 작은 사회에 가깝다. 경민과 종석은 그들 부모의 직업으로 인해 학교에서 이른바 돼지에 해당하는 하위계층을 향하고 폭력의 대상이 된다.

철이는 돼지의 반란을 이끄는 캐릭터다. 폭력에 더 강한 폭력으로 저항하는 철이의 모습은 ‘돼지의 왕’이란 제목이 지닌 의미를 표면적으로 상징한다. 성인이 된 경민과 종석 모두에게 왜 철이의 환영이 등장하는지, 이들에게 철이가 어떤 의미인지를 극 중반부터 보여주며 원작이 지닌 재미 요소를 적절하게 배분한다. 경민의 살인과 종석의 망각이 각각 철이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점에서 단순 학교 폭력 에피소드로 캐릭터를 소모하지 않는 미덕도 선보인다.

OTT를 통한 공개는 <돼지의 왕>에게 있어 호재였다고 볼 수 있다. 어둡고 거친 질감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시청률을 통한 외부평가를 최소화 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고 OTT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고 본다. 때문에 가학적인 학교 폭력이 가학적인 경민의 복수로 이어지는 과정을 강렬하게 담아낸다. 원작의 포인트를 효과적으로 배치한 건 물론 분량을 키우기 위해 살을 입히는데 이질감이 없다.

이런 성공적인 시도의 배경에는 앞서 OCN을 통해 방영된 <구해줘2>의 존재가 컸다고 본다. 이 작품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원작으로 16부작으로 방영되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실사 장편 드라마로 늘리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보였다. 원작의 포인트를 중후반부에 배치하려다 보니 초반부가 지나치게 늘어졌다.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드라마를 시도했지만 그 알맹이가 탄탄하게 여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중후반부 핵심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려다 보니 이 작품만의 새로운 요소를 확장하지 못한 점이 크다. 엄태구, 천호진, 김영민 등이 원작의 캐릭터에 입체적인 매력을 더하며 인생연기를 선보였음에도 이 작품이 연상호 월드의 파생 세계관 중 하나로 잘 언급되지 않는 이유다. 원작이 지닌 매력 포인트를 통해서만 임팩트를 주려다 보니 확장된 이야기와 포인트 사이에 이질감이 생긴다. 체격이 다른데 같은 옷을 입으려다 보니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티빙은 연상호 원작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을 각색하는데 있어 그 색깔의 통일성과 시리즈가 가진 고유의 색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교폭력의 원인을 사회가 지닌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 시간의 연장을 달리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잊고만 싶은,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배치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과시한다.

<돼지의 왕>은 파급력에 있어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없다. 대신 다양성에 있어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성인 관객들을 위한 잔혹한 우화를 높은 완성도로 재창작해내며 다수의 구독자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라는 목적을 달성해냈다.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 대한민국 대표 성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점만으로도 인상적인 시도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現 키노라이츠 편집장
前 씨네리와인드 편집장
前 루나글로벌스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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