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t Viewed

Categories

[키노 인터뷰] 성적표의 김민영,”섭섭하고 서운한 감정” 공감할 경험 소환했다

누구에게나 과도기가 있다. 여기에서 저기로,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는 일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지난 9월 2일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여름의 끝자락에 잇나인 테라스에서 임지선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코로나 확진으로 이재은 감독은 화상으로 자리했다. 어쩌다 보니 앞서 말한 경계가 사라지고, 온.오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인터뷰였다.

둘 다 장편 데뷔작이다. 소회를 묻자 이재은 감독은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 친구 만나러 가는 느낌으로 만나러 오셨으면 좋겠다. 극적인 긴장감이나 액션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날 수 있는 영화다.”라며 각자의 유년 시절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임지선 감독은 “누군가는 정희에게 이입하고 누군가는 민영에게 이입해서 보게 되는 흥미로움을 느껴 보길 바란다.” 각자에게 이입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무 살, 불안함과 설렘

임지선 감독

사실 공동 연출이 힘들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지만 부담감도 상당할 것 같다. 하물며 가족이나 친구 사이도 의견 차이가 있는데 사회에서 만난 성인이 뜻을 모아 만든 결과물이다.

임지선 (이하 임): <성적표의 김민영>은 5년 전 2017년 단편에서 출발했다. 계속 이야기를 덧붙여 만든 장편이다. 한겨레 영화 워크숍에서 만났다. 단편 한편 씩 만들어 놓은 상태였고 졸업 작품 같은 형식이 남아 있었다. 이재은 감독이 함께 하자고 먼저 제안해서 하게 되었다. 영화 만들고 나서 2년 정도 공백이 있었다. 그때도 자주 만나서 시나리오를 발전했고 개봉까지 오게 되었다. 사소한 것까지 다 상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탈 날 것 같았다. 내 의견을 관철하기보다 결과물에 좋다면 그 방향으로 맞추는 방법을 택했다. 큰 틀에서 톤 앤 매너는 지키고자 했다. 생각이 잘 맞았다. 그래서 더 얼떨떨하고 신기하고 그렇다.

이재은(이하 이): 긴 시간이 지나서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개봉까지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스무 살은 일생일대의 딱 한 번 찾아온다.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완벽한 숫자 같지만 어설픔도 있다. 두 사람의 스무 살이 궁금하다.

임: 어떤 일을 하고 사는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정희처럼 스무 살에 대학 가지 않고 혼자 많은 생각을 했었다. 명확하게 담담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돌고 돌아서 영화라는 걸 찾게 되기까지, 항상 불안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긴 하다.

이: 민영처럼 대학에 갔는데 전공이 안 맞다 느껴 재수했다. 음.. 그야말로 평범한 재수생이었다. (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 학교 친구들이 많이 생각났다. 최근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영화를 핑계 삼아 연락해 볼까도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 소원해진 친구나 지인에게 연락해 본 경험이 있었나.

임: 불안했던 때 이후로 멀어진 친구가 떠올랐다. 연락 끊긴 지가 오래돼서 생각만 나는 정도였다. 역시나 용기가 부족하더라. 영화 속에서라도 용기 있는 캐릭터 ‘정희’를 통해 해소하고 싶었다. 정희 같은 성격이 부러웠다.

이: 시나리오를 쓸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멀어졌다. 어쩌다 보니까 안 하게 되더라. 정희처럼 연락할 용기가 없어 그냥 생각만 하다가 말았다.

김민영의 성적표가 아닌, 성적표의 김민영인 이유

이재은 감독

제목 때문에 김민영의 이야기겠지 예상했는데 정희가 오히려 눈에 들어왔다. 정희는 회복 탄성력이 높은 인물인 것 같다. 수능을 망처도, 알바에서 잘려도, 친구와 멀어져도 그 상처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무던한 성격이다.

이: 엉뚱한 면을 참조한 친구가 있다. 청주여자고등학교를 다녔고 기숙사 생활을 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빨대를 세 개 연결하고 과자를 껴서 먹는 친구다. (웃음) 사실 정희는 이상향 같은 인물이다. 하나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인물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들뜨지 않고 진중한 성격을 닮고 싶어 만들어낸 친구다.

임: 청주가 배경인 이유와도 비슷하다. 서울이나 광역시가 아니라. 청주 정도의 규모, 거기에 기숙사 생활이라면 외부 스트레스 없이 그들만의 소소한 추억을 쌓았겠지 생각했다. 충청인이 주는 평온한 이미지도 한몫했다.

정희는 늘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때가 언제인지, 그런 대사를 넣은 의도가 있을 텐데.

임: 떡볶이 가게 주인이 “학생이야?” 묻는데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이 든 거다. 정희만의 마음을 다잡는 대사다. 기다려주고 지켜보고 싶었다.

이: 고민했던 대사다. 처음에는 자기 선택에 후회 없이 단단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선택의 확신과 불안함이 없을까 고민이 찾아왔다. 상의 끝에 정희는 ‘확신을 가지고 싶은 인물’이라 판단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답답해 보이고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정희와 민영, 수산나 중 각자 더 비슷한 캐릭터를 찾으라면 누구인가. 잊지 못할 신스틸러다. 정일과 수산나 캐스팅 비화도 궁금하다.

임: ‘민영’에게 공감되었다. 스무 살에 정희처럼 담담하지 못하고 민영처럼 불안해하고 호들갑 떨면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된 거 같다.

이: ‘수산나’와 비슷하다. 정희처럼 용기를 내기보다는 떠나는 방식을 택했던 거 같다.

임: 정일(임종민), 수산나(손다현)는 보물 같은 특별한 캐스팅 사이트에서 찾았다. 프로필 사진에 특히 신경 쓰지 않나. 그렇데 이 친구들은 형광등 조명 아래, 핸드폰으로 찍은 현실적인 얼굴이 있던 거다. 임종민 배우는 당시 18세, 수산나 배우는 16세였다. 현실에 있을 법한 순수한 얼굴이 영화의 톤과 잘 맞았다.

극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틀어 놓는 정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액자식 구조의 짧은 시트콤, 유튜브를 넣어 신선했다.

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제일 좋아하는 시트콤이다. 하루 종일 봤었다. 영삼이처럼 바보 같지만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부러움을 느꼈다. 정희라면 이런 캐릭터에 공감할 것 같았다.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를 살리면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넣게 되었다.

임: 유튜브는 졸업 후 대학에서 달라진 민영의 심경을 위해 추가했다. 영화를 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만날 수 있는 방식이 뭘까 고민한 결과다. 현실과는 다른 톤이고 싶었다. 시사회에서 재미있는 반응이 있었다. 어느 관객분이 ‘광고인 줄 알았다’, ‘사고인 줄 알았다’라는 재미있는 의견을 주었다. 이 정도면 의도가 성공한 것 같다. (웃음)

흑역사 소환, 사실 현타온다

이재은, 임지선 감독

비 오는 날 수경 쓰고 자전거 타기, 햇반으로 경단 만들기, 백 덤블링 등 엉뚱한 장면이 많다. ‘대구대 대구에 없어대사도 재미있어 찾아보니 진짜였다.

이: “대구대 대구에 없는데..”라던 현장 스탭의 말에 영감 받아 추가된 대사다. 빌린 물건을 주러 온 옆집 사람을 연기한 배우는 당일 캐스팅한 친구가 연락두절 되어서 스크립터 스탭으로 대체한 거였다. 사실 현타 온다. 왜 이런 거를 했던 거지? (웃음)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다. 폭우가 와도 내일 자전거를 타야하니까 무리해서 갔던 거다. 쫄딱 비 맞고 보니. 딱 자유형 한 시간 하고 난 후 같은 감정과 느낌이었다. 경단 만들기도 내 경험이다. 기숙사 생활 오래 했는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떡이 먹고 싶었던 거다. 떡집이 주변에 없고 햇반으로 떡을 만들어 먹자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안 된다는 거다. 오기가 생겨서 했던 행동이다.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즐거웠다. 지나고 나니까 기억이 오래 남더라.

정희가 그린 자연사랑 공모전의 숲의 정령그림 속 얼굴에 민영이 비친다.

임: 정희가 상상하는 숲의 장면이지만 이 영화가 정희가 하룻밤을 통해서 민영이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정희도 나름의 외로움을 갖고 사는 인물이다. 민영의 일기장을 보고 한 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인 거다. 서운함과 상처받은 게 남아 있겠지만, 그림을 그렸을 때 한 번쯤은 민영의 얼굴에 대입해서 생각했을 것 같다.

민영이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기 힘겨워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한국인이 지겹기도 하고 매우 공감 가기도 했다.

임: 남 눈치 보고 가식적이라는 투덜거림이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드러나는 거다. 성적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한국 사람이 싫다는 불만, 뭐든 답답해하고 있다. 오빠 집에 걸린 남자들만 찍은 가족사진을 봐도 그렇다. 편입 이유도 비슷하다. 술 먹고 진상 부려서 찍히고, 동기들과의 관계도 있고, 은밀한 꿈인 아이돌 데뷔도 있겠다.

이: 민영을 만들어 갈 때 한국인의 특징이 민영 자체였으면 했다. 한국인의 특징을 투덜거리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거다.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하는 인물은 오히려 정희인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민영이다.

마지막으로 키노라이츠 유저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인생 영화가 있다면?

임: 우리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요노스케 이야기> 속 관계를 레퍼런스 삼았다. 시골 청년 요노스케가 도쿄로 오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다. 요노스케의 따뜻함, 순수하고 정이 많은 부분을 참고했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조던 필 감독의 <놉>이다. 정립이 잘 안돼서 오히려 좋았다. 예측 불가능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놉>이 그랬다.

이: 영화적인 상상력이 있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이미 아는 감정을 영화 속에서 확 느꼈을 때 더 좋아지는 편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좋아한다. 주인공이 의도치 않았지만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면이 내 모습 같아 공감했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참고했던 거 같다. 극장에서 최근 본 영화는 <로스트 도터>다.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다루고 있다. 낮에는 조금 덥고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과 가을의 사이에 어울리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불현듯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를 향해 무언가를 해봐도 좋겠다. 일부러 연락하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전달되지 않을까..

    Leave Your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