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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가족> 이 가족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만 원을 구걸하게 된 이유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들었던 생각과 보고 난 후 생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란 말이 떠오른다. ‘고속도로 가족’? 제목이 주는 의뭉스러움에 이끌려 결말까지 왔는데 과연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했던 작품인데 아직도 아스라한 여운이 남아있다.

<고속도로 가족>은 모종의 이유로 걸어서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는 가족과 아들을 잃은 부부가 교감하는 내용이다. 티베트에서 말하는 순환과 영원을 ‘구원’이란 깨달음으로 펼쳐낸다. 너무 막연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노숙하는 가족이 안타까워 자기 삶에 들인 여성이 이들을 돌보면서 상처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평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존경했다며 <아무도 모른다>를 레퍼런스 삼았다고 밝혔고 필자는 <어느 가족>도 떠올랐다.

코믹 이미지가 강한 라미란 배우의 정극 연기는 탄탄한 중심을 잡는다.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해오던 정일우의 파격 변신이 돋보인다. 이젠 배우로 완전히 각인된 김슬기의 존재감과 전방위적 아티스트로 불리는 백현진이 합류해 앙상블을 펼친다. 무엇보다 두 아역 배우가 없었다면 영화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두 어린이의 때 묻지 않은 모습과 귀여움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상쇄하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슬프지만 환상적인 상황이 전반적인 분위기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2만 원만.. “

영선(라미란)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기름값 2만 원을 빌리는 기우(정일우)를 만난다. 미심쩍어 보였지만 소액이라 계좌번호를 달라는 기우의 말에 대충 명함을 주면서 마무리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 둘에 임신한 엄마까지 합세하니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심 쓰듯 김에 5만 원을 더 얹어 주었다.

한편, 기우와 지숙(김슬기)은 은이(서이수)와 택(박다온)과 끈끈한 가정을 꾸린 엄연한 가장이다. 밤에는 무한한 별을 볼 수 있고 낮에는 넓은 놀이터가 되어주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생활한다. 모든 일이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하지 않나. 가족은 결코 슬프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처량하다기보다 사랑하면 어디든 천국이라 믿는다. 자연을 벗 삼아 매일 캠핑하는 기분으로 살면 그만이다. ‘인생은 놀이고 삶은 여행’이다.

하지만 곧 위기가 다가왔다. 휴게소에서 2번이나 마주친 영선은 이상함을 참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기우는 조사를 받고 가족을 헤어진다. 영성은 사정을 알게 되자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품을 내어준다. 중고 가구점의 빈방에서 오랜만에 가족은 푹신함 안락함,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등 따습고 배부른 하루가 쌓이자 지숙은 기우를 서서히 잊어 간다. 어쩌면 오랫동안 사랑이란 허울로 가스라이팅 당한 건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행복하다는 기우의 말은 자꾸만 헛소리로 들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학교도 보내야 했고, 배 속에 아이가 거꾸로 있어 위험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과연 이대로 다시 돌아가는 게 맞는 걸까. 엄마 지숙은 자꾸만 딴생각이 차오른다.

화마가 만든 상처와 재생의 아이러니

<고속도로 가족>은 작은 불씨로 커진 화마가 빼앗아 간 두 상황을 중심으로 한다. 하나는 청소년 수련원 화재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부부의 사연이고, 나머지는 후반부 기우가 만들어 낸 사건이다. 비극처럼 보이지만 낯선 사람을 연결하고 다시 일어나도록 이끌어 주는 희극일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던 가족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지할 땅을 만난 것이다. 공간은 오랫동안 비어있어 아무 생명도 피어나지 못했지만 이제 작은 민들레 홀씨가 날아와 희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비극과 희극의 정의는 본인이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렸다. 작은 불씨가 퍼져 모든 것을 태울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한 가족은 해체되었지만 다른 가족으로 변화했다. 영원을 바라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순환한다.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혈연으로 맺어진 전통 가족을 비트는 대안 가족의 형태를 말한다. 위험했던 고속도로는 어찌 보면 변화로 나아갈 길이 되어준 것이다.

이상문 감독은 제작자인 아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데뷔했다. 기우의 지질한 캐릭터는 자신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라미란과 백현진이 꾸리는 중고 가구 매장의 설정은 실제 장인,장모님에게 영감받았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캐릭터는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주변과 가족을 보며 완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깨끗이 닦아 새것처럼 되팔아지는 일련의 과정은 재생을 떠오르게 한다. 과연 개인의 선한 의지만으로 유토피아를 만드는 게 가능한지 묵직한 울림도 전한다. 영화의 엔딩이 현실일지 환상일지, 행복일지 불행일지는 각자의 삶에 비추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영화를 본 지 좀 되었지만 글로 옮기면서 마음이 몇 배로 무거워졌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있는 탓도 있지만, 며칠 전 안타깝고 황망한 일 때문일 거다. 사람답게 사는 게 참 힘든 차가운 세상이다. 주변에 혹시라도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관심을 두길 부탁한다. 그저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따뜻한 온기가 있다면 어려운 세상에 조금은 힘이 될 거라 믿는다. 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마음을 전한다면 분명 닿을 것이다. 나도 겪을 수 있다는 마음, 역지사지 마음으로 인류애를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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