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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퀴어 로맨스 장르를 뛰어 넘은 스릴러

최근 퀴어물에서 도드라지는 특징은 더 이상 로맨스, 멜로 장르에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성 연인을 필두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영화의 크로스오버가 반갑다. 그 연장선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우리, 둘>은 단순한 레즈비언 커플의 러브스토리 그 이상의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스릴러 장르가 결합해 있다. 들켜서는 안되고 말할 수 없어 숨겨왔던 20년간 비밀스러운 사랑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홀가분해지는 격정적 감정까지. 몰래 숨어 사랑을 속삭였던 두 사람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고난에서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와 헌신이 절절히 전해진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집’은 여러 모도 둘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서로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구조처럼 둘은 하나에서 쪼개진 소울메이트 이상의 관계임을 보여준다. 복도를 사이에 둔 서로의 집은 인테리어와 취향을 반영한 캐릭터의 설명과도 같다. 이는 그동안 보아온 퀴어물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독창성을 갖추며 영화의 결말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사이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로마로 떠날 계획을 세운 마도(마틴 슈발리에)는 앞집에 사는 니나(바바라 수코바)와 오랜 연인 사이다. 겉으로는 절친한 이웃사촌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집을 내 집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남부러울 것 없는 노년의 사랑을 키워가는 끈끈한 커플이었다. 호방한 성격의 니나와는 반대로 소극적이고 조용한 마도는 가족들에게 니나를 소개해 준 적도, 삶을 정리하고 로마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말도 하지 못한 상태다.

차일피일 미루던 사이 시간은 흘러 마도의 생일이 다가왔고 가족이 한데 모인 상황, 커밍아웃하려 했지만 엉겁결에 무산되어 버린다. 그러던 중 이 커플의 노년에 급재동이 걸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마도가 결국 충격을 받아 쓰러진 것이다.

병명은 뇌졸중. 니나는 우리 관계를 왜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다그쳤던 자신을 탓하며 마도가 깨어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면회조차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가까스로 퇴원한 마도를 황급히 보러 갔지만 간병인의 제지에 문 앞에 두고 돌아와야 했다. 둘의 오작교가 되어주던 복도는 어느새 출입을 막아서는 장벽이 되어버렸고 갈 곳을 잃은 니나는 절망에 빠진다.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급변하는 장르의 신선함

영화 <우리, 둘> 스틸컷

자신을 잃어버린 마도를 보고 니나는 충격을 받는다. 어디 있는지 모를 흐릿한 시선, 몽롱해 보이는 표정, 말도 하지 못하는 마도를 본 니나는 죄책감에 커지지만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절망한다. 그저 밤마다 몰래 마도의 침실로 파고들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다. 하지만 위태로운 만남은 주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리기만 할 뿐이었다.

드디어 로맨스에 치중한 전반부가 지나면 장르는 이탈해 스릴러로 변해 있다. 딸 앤(레아 드루케)이 고용한 뮤리엘(뮤리엘 베나제라프)은 사사건건 니나와 부딪히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엄마와 환자를 수상한 앞집 여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과 그들로부터 구해내야만 하는 사람 사이의 신경전이 그러진다. 오감을 자극하는 공감각적인 시퀀스도 한몫한다. 신경질적으로 눌러대는 초인종, 가스레인지 위에서 검게 타들어 가는 프라이팬, 돌아가는 세탁기의 날 선 소음, 와장창 깨지는 창문, 도어 스코프로 훔쳐보는 듯한 관음의 시선, 한 밤의 낯선 침입자 등 서스펜스를 극도로 유발한다.

아빠를 평생 사랑한 줄만 알았는데 감당하기 힘든 진실 앞에 무너지는 딸의 입장까지도 섬세하게 포착했다. 존경하는 엄마의 거짓말을 알아버린 딸의 실망감도 느껴진다. 엄마를 이해하기 힘든 딸과 해명하지 못해 답답한 엄마, 밝힐 수 없는 관계를 이끌어 온 비밀스러운 연인의 묘한 삼각관계도 여느 영화에서 보기 힘든 구성을 따른다. 겉으로 봐서는 평범해 보여 속내를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관계를 표현한 두 배우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20년간 참고만 살아온 세월을 보상받기는커녕 더 이상 부정당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전해진다.

영화는 노년을 맞이한 레즈비언 커플의 아름다운 모습과 부딪히는 현실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상황을 극복해내는 연료는 대부분 ‘사랑’일 때가 많다. 마도와 니나를 보고 있자면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란 말을 증명하는 듯하다. 숭고한 사랑, 그 이상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자던 애틋함은 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발맞춰가는 이인삼각 경기를 보는 것처럼 깊은 신뢰가 전해진다. 함께 한 날 보다, 같이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막바지는 그래서 더욱 초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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