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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요상한 양자경의 멀티버스

멀쩡히 잘살고 있는 일상에 멀티버스가 열린다면 어떨까. 어디로도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건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고 뒤죽박죽인 시간이 내 이야기라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을 대리만족해준다.

지겨운 일상, 뜬금없는 멀티버스

아버지가 반대하는 남편 웨이먼드 (키 호이 콴)와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은 세무조사를 받아야 할 위기에 처한다. 정리해야 할 영수증은 산더미에 결혼 후 절연했던 아버지가 집에 와있는 초민감한 상황이다. 분주한 에블린과 달리 웨이먼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부관계의 회의를 느껴 이혼하고 싶어 하는 그이는 소심해서 서류조차 내밀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다.

한편, 여자친구 벡키를 인정받기를 원하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랑 관계가 자꾸만 삐걱거린다. 오늘따라 세탁소마저도 도와주지 않는다. 진상 손님 난입, 아버지의 등장은 애교다. 국세청 직원(제이미 리 커티스)의 빈정거리는 태도가 이어지자 딱 도망가고 싶었다.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던 에블린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느닷없이 웨이먼드는 말투와 표정이 변하더니 자신을 알파 웨이먼드라 소개한다. 그리고는 혼돈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다. 잠시만, 이렇게 평범한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능력자라고?

리우드 속의 아시아계 약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상함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최근 ‘이상함’은 또다른 매력으로 여겨지며 반향을 이룬 바 있다. 그 이상함에 방점을 찍고, 멀티버스라는 마법을 통해 미친 상상력을 총동원한다. 어디에서도 시도한 적 없는 실험성이 투철하다. 온갖 정신 나간 설정과 B급 병맛 요소가 총망라되어 있다.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 아니 새로운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과한 텐션은 전작 <스위스 아미 맨>으로 이미 증명한 바 있다. 기상천외한 괴작이란 평가 받으며 B급 영화 마니아층에서 손꼽는 영화면서도 2016년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독특한 세계관을 인정받았다. 이를 일찍이 알아본 루소 형제는 제작에 참여했고 전작에 이어 A24와 협업,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20년 만의 할리우드 첫 주연작

양자경의, 양자경에 의한, 양자경을 위한 영화다. 20년 전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의외로 주연을 맡지 못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양자경’의 첫 번째 단독 주연작이다. 그동안 출연한 작품 수와 존재감을 따져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계, 여성이 뚫을 수 없는 두꺼운 유리천장을 증명하는 사례이지 싶다.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이하, 다니엘스) 감독은 원래 성룡을 주인공하려했었다. 무산된 후 고민 끝에 양자경을 염두에 둔 여성 서사로 각색했다. 양자경의 삶 자체인 각본은 양자경이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의 전시장 처럼 절절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자취를 감춘 ‘키 호이 콴’을 소환하는 데 일조했다. 양자경의 남편 웨이먼드로 참여한 그는 <인디아나 존스>, <구니스> 등 80년대 아역 배우로 할리우드를 평정했었다. 하지만 한계를 실감하고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삶을 살아왔었다. 하지만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성공에 자극받아 스포트라이트 받는 무대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영화가 바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딸이자 빌런 역의 ‘스테파니 수’는 불만투성이 딸과 멀티버스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악당을 동시에 연기하며 무한한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캐릭터는 국세청 직원을 연기한 ‘제이미 리 커티스’다. 70~80년대 호러퀸으로 성공, 최근 <나이브스 아웃>으로 복귀해 묵직한 존재감을 떨쳤던 만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비주얼과 연기 변신은 이 영화의 톤앤매너를 더하는데 일조한다.

혼돈으로부터의 오는 질서

돌고 돌아 결국 가족의 사랑을 확인한다. 혼을 쏙 빼놓는 화면과 다중우주 속 인물의 서사가 버겁다면 애써 따라갈 필요는 없다. 캐릭터가 대체 왜 저러는지 궁금해도 잊어버리자. 개연성 사라진 서사에 당황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면 된다.

끝도 없는 혼란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져도 정신 줄 하나만 붙잡으면 된다. 궤도를 이탈한 모녀, 부녀, 부부가 다시 정상 궤도에 돌아올 방법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본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대자연 우주와 소우주 인간을 자주 비유했다. 소우주 인간이 만든 가족, 수많은 가족으로 형성되는 우주. 반복되는 인생의 무한궤도에 ‘사랑’이란 연료가 더해지면 더욱 윤택해진다. 코스모스(질서)와 카오스(혼돈)는 결국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삶이라는 철학적인 주제관도 선보인다.

평범한 이민 세대가 자식 세대와 충돌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소식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의 접점이 한 영화에 들어 있다. 요즘 대세인 혼합 장르다. SF인 줄 알았는데 쿵후 액션물이고, 가족영화이면서 여성 영화, LGBT 영화다. 이민 세대의 어려움이 담긴 디아스포라적 장르를 품으면서도 희로애락이 깃든 한 편의 드라마다.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실험적인데 재미와 감동까지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 마블의 멀티버스 못지않은 다중우주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펼쳐진다.

참고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로 먼저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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