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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왕세자비 대신, 스펜서를 택한 여성

다이애나는 스펜서 백작 가문의 셋째 딸로 태어나 영국이 사랑하는 왕세자비가 된 후 로열 패션의 아이콘, 파파라치와 대중의 관심의 대상, 남편 찰스 왕세자의 불륜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중 끝내는 이혼. 이후 자선활동과 봉사에 매진하다 파리에서 파파라치를 피하다가 교통사로 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여인이다.

이미 영화 <다이애나>와 드라마 [크라운] 등 여러 작품에서 소비된 왕세자비를 소환했다. 새로울 것 없는 인물이지만 그녀의 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 같은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창조한 다이애나의 우울하고 불행했던 3일을 인상적으로 포착했다.

싱크로율 보다 내면을 연기한 배우, 전기보다 독창적 연출이 돋보이는 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아역으로 데뷔해 할리퀸 로맨스물 <트와일라잇>의 벨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발연기 소리를 들었던 예쁜 스타를 지나 <클라우드 오브 실스마리아>를 통해 본격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퍼스널 쇼퍼>로 연기 찬사를 받으며 앞으로가 기대되는 명배우로 우뚝 섰다. 최근 <세버그>에서 배우 진 세버그로 변신했던 이력까지 추가하면 칭찬이 입 아픈 배우가 되었다.

<스펜서>는 그녀의 연기 인생 중 분기점에 해당하는 영화다. 처음부터 아름답고 마지막까지 찬란하게 빛난다고 할만한 눈부신 성장이다. 다이애나의 큰 키와 소년처럼 짧은 커트 단발머리를 그대로 모방한 게 아니다. 그저 자신만의 다이애나의 얼굴과 말투, 표정, 제스처를 재해석해 매력을 발산한다. 연약하고 아름다워 부서질 것만 같은 다이애나는 안쓰럽고 숨 막힌다. 현재 전 세계 27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라 대세임을 증명했다.

감독 파블로 라라인은 <재키>, <네루다> 등 실존 인물의 심리를 포착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재클린 케네디’를 다룰 때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부인이자 남편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한 여인의 심정을 담담하게 따라갔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혼란, 하지만 묵묵히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책무가 무겁게 오버랩된다.

<네루다>에서는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이면서 민중 영웅인 ‘파블로 네루다’를 담았다. 정치적 도피 생활 2년을 비밀경찰 오스카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일 포스티노>의 시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네루다를 독특한 스타일을 연출해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왕가 별장에 유령이 출몰한다는 괴담에 착안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재키>와 <네루다>의 교집합이 보이면서도 자신만의 고집이 훤히 보였다.

왕가 별장에서의 고단했던 3일을 따라..

크리스마스이브 영국 왕실은 샌드링엄 별장에 모여 3일을 보내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자리가 몹시 불편하다. 벌써 10년째지만 적응되지 않는 것은 물론 불만스러운 일만 가득하다. 추운 바깥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난방을 하지 않는 것도 전통인가 보다. 아이들도 있는데 춥다고 하면 담요를 더 덮으라는 말로 무시한다.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들, 전통이란 허울로 뚜렷한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는 숨 막히는 왕실가(家)다.

그날도 다이애나는 행사를 마치고 수행원 없이 단독으로 운전하며 오는 길이었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였지만 가기 싫었는지 길을 잃고 헤매다 늦게 도착해 빈축을 산다. 가까스로 도착한 별장에 들어오자마자 사람을 짓누르는 분위기에 압도된다. 왕가는 전통이랍시고, 몸무게를 재며 행복까지 측정한다. 크리스마스 연휴 3일 동안 즐겁게 놀다 간 흔적을 늘어난 몸무게로 치환하는 고루함이 숨 쉬는 곳이다.

요리, 옷, 세팅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 있었지만 더없이 공허해져만 갔다. 3일 동안 입어야 하는 옷과 장신구가 정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장 안에 새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남편 찰스 왕세자(잭 파딩)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는 그녀를 옥죄어만 간다. 불륜을 저질렀으면서 뻔뻔하게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체면을 지킨다. 왕실은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고 묵묵부답하면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갈 일쯤으로 넘겨 버렸다. 그 여자한테도 똑같은 진주 목걸이를 줬다는 소문이 돌자 다이애나의 심경은 갈갈이 찢긴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요주의 인물이 된 다이애나를 가까스로 챙기는 인물들이 더러 있어 다행이었다. 왕세자비 직속 디자이너 매기(샐리 호킨스)와 주방장 대런(숀 해리스)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윌리엄(잭 닐렌)과 해리(프레스 스프라이)가 있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 (스텔라 고넷)의 눈치와 압박은 심해지기만 하고, 비극적 운명을 맞은 여왕 ‘앤 블린’에게 빠져들며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게 된다. 극도의 불안과 거식증, 신경쇠약, 자해까지 더해져 마음이 황폐해져갔다.

로열패밀리를 나와 한 여성이 되고자 한 결심

영화는 찰스 왕세자의 외도 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배신, 외로움으로 방황하던 절정기다. 다이애나의 이름보다 성인 스펜서를 제목으로 써, 로열패밀리에서 멀어지려는 의지를 강하게 어필했다. 다이애나는 앤 블린의 영혼에 잠식 당하고, 관객은 다이애나의 심리에 압도된다. 앤 블린은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다. 그녀와 재혼하기 위해 종교까지 만들었던 헨리 8세의 왕비였나, 천일만에 간통 누명을 쓰고 런던 탑에서 참수당한 왕비다. 다이애나는 그녀의 과거와 본인의 미래를 동일시하면서 정신을 지배 당한다.

그래서 내내 우울하고 차가우며 날 서 있는 분위기다. 시간상으로 단 3일, 러닝타임 116분이지만 그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담겨 있어 먹먹함은 배가 된다. 대중 앞에서 늘 미소 지어야만 했던 밝고 화려한 얼굴이 이 영화에는 없다. 폐쇄적인 법규 아래 대립하고 갈등하는 인간 스펜서만 있다.

다이애나는 내뱉은 말은 벽을 타고 흐르고, 생각까지 모두 들린다는 왕실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싫어 연휴 내내 대립각을 세운다. 급기야 폐가가 된 근처의 생가를 향해 몰래 빠져나갔다 위험에 처한다. 그곳에서 영적인 경험을 한 그녀는 왕실의 꼭두각시의 삶을 버리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만인의 왕비가 아닌 한 여성의 삶을 선택하겠노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다이애나의 마지막을 알고 있기에 영화는 쓸쓸함만이 가득하다. 의지를 갖고 족쇄를 풀었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음을 증거로 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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