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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사막의 왕] 출근해서 동그라미만 그리는데 월 600주는 이상한 회사

6부작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사막의 왕]은 ‘돈’이 중심인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모습을 그린 독특한 작품이다. 한 회당 30-40분 내외로 짧지만 한편의 독립된 영화를 보는 듯 대사, 표정, 미장센이 압권이다. 의미와 상징을 함축하고 있어 보자마자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몇 번이고 곱씹어 봐야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내 삶을 CCTV로 지켜본 것 같은 리얼리즘, 뼈 때리는 대사,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묘하게 빠져드는 1화 ‘모래 위의 춤’을 넘어서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2화부터 쭉 정주행할 사람과 여기서 끝낼 사람이 정해진다. 취향만 맞는다면 극호를 부르며 뒷이야기의 궁금증을 파고들게 만드는 시리즈다.

심상치 않은 상상력은 [D.P] 작가 김보통의 머리에서 시작되었다. 김보통 작가는 총 6화의 초고를 썼으며, 1화 ‘모래 위의 춤’을 직접 연출했다. 2,3,5화는 이탁 감독이, 4,6화는 이태동 감독이 맡았다. 웹툰 작가, 수필가, 이번엔 시나리오 작가와 드라마 연출까지 섭렵한 김보통의 무한확장을 경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루 종일 동그라미만 그리다가 퇴근했다

애플TV 플러스의 [세브란스: 단절]이 떠오르는 1화는 어렵게 취직에 성공한 회사에서 겪게 되는 이서(정이서)의 정체불명 업무를 따라가도록 했다. 문팰리스에 입사한 이서는 첫 출근 날 23층 부서를 비상용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엘리베이터에 23층은 허락되지 않았다. 22층에 내려 계단으로 가면 안 되냐는 말에 엘리베이터 속 사람들은 쓰레기 보듯 경멸의 눈빛을 보낸다. 어쩔 수 없이 걸어서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5개의 책상만 덩그러니 있었다.

난관은 거듭된다. 자기 자리로 그냥 걸어가면 안 되었다. 구불구불하게 그려진 흰 길을 따라 걸어가야만 한단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일단 규칙에 따르고자 한다. 회사는 궁금한 것은 함구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그런척해야 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상에 도착한 이서를 기다리고 있는 건 흰 종이와 연필, 지우개다.

사수 동현(양동근)에게 업무를 인계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그라미, 엑스, 세모, 네모 등을 그렸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는 게 종일 해야 할 일이었다. 이 무의미한 일에 8시간을 보내니 무기력해진다. 점심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책상으로 배달되는 파스타, 샌드위치, 떡 등을 먹기만 하면 된다. 대체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퇴사하고 싶은 욕구만 쌓아간다.

며칠 후, 이서는 무의미한 일에 굳이 의미를 찾으려고 안달했다.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일에 진을 빼고, 웃음거리로 모욕 당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게 ‘업무’였다. 적성에도 안 맞고 괴로워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월급을 확인하자 생각은 바뀐다. “대체 공이 몇 .. 개야?” 지금까지 무의미했던 회사 생활에 의미를 찾게 된 이서. 회사원을 치료해 줄 단 처방전은 바로 ‘입금’이라는 끊을 수 없는 마약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이야기

[사막의 왕]은 웹툰 ‘아만자’, ‘D.P’ 등으로 알려진 김보통 작가의 신작이다. 웹툰 작가를 넘어 드라마 대본, 연출, 각색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했다. 왓챠에서는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은 캐릭터나 확장된 세계관을 다룬 스핀오프 웹툰도 서비스 중이다. 해갈되지 않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의문점을 해소하고 또 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방식이라 신선하다.

‘사막의 왕’이란 의뭉스러운 제목을 따라 달리다 보면 대체 사막은 언제 나오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사막은 일종의 황폐해진 인간을 비유한 상징이다. 푸른 숲이었지만 자본의 노예가 되어 돈을 좇다가 사막화된 인간을 말한다. 사막의 왕은 자본주의를 인간으로 시각화한 문팰리스 대표를 진구다. 그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에피소드를 누빈다.

돈 앞에 인간성을 상실한 루저, 자본주의 사막에서 기형적으로 생존한 인간, 의미 없는 일에 빠져 정작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 아빠와 딸, 보통의 사람들 앞에 놓인 일생일대의 기회를 탐미하게 만든다. 에피소드마다 변주가 거듭되는데 앞을 알 수 없고 예사롭지 않아 흥미롭다.

돈이 정의고 삶의 의미인 시대?

여섯 개의 이야기는 묘하게 얽혀있다. 등장인물이나 오브제가 겹쳐 유대감을 형성한다. 돈을 매개로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선 캐릭터가 날 선 메시지를 던진다. 때로는 피식거리는 썩소를 유발하고, 광기에 사로잡혀 울분을 토하다가, 짠한 감동으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헛웃음이 나오며 뒤통수를 제대로 때린다. 얼얼하고 매몰차다.

일의 의미를 찾는 사람 앞에 ‘돈이 이유고 의미다’라는 대사는 점차 맞는 말이 되어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최고가 된 지 오래고, 인간성이 말살된 충격적인 뉴스는 돈 때문에 일어나니까. 세상은 이제, 돈이 정의가 되고, 돈이 되는 일이 정의 구현인 거다. 돈으로 못할 것 없는 세상, 당신의 ‘선택’을 집요하게 묻고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작은 아씨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통해 부유한 집안을 뒤흔들고 운명을 개척한 이야기를 좋아했다면 추천한다. 비록,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향과 스타일은 차이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연료인 ‘돈’ 앞에 선 사람들을 다양하게 고찰했다. 과연 ‘돈 앞에서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나’, ‘직장에서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쓰며 사는 게 맞는 일인가’ 등 현실적인 문제를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마주하는 아이러니가 끝까지 시청하게 만드는 힘이다.

최근 노동시간을 늘린다는 방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21세기인데 역행하고 있다. 52년 전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말한 전태일 열사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돈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돈의 가스라이팅에 오늘도 굴복한 것 같아 못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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