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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 새로 쓰는 햄릿 여성사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오필리아 시점에서 재해석한 영화다. 여성 각본가, 연출가, 배우가 합심해서 만든 여성 초점의 트리플 F 영화이다. 리사 클라인의 소설 《오필리아》를 바탕으로 각색했다. 불륜, 살인, 배신의 세 요소는 K 치정극의 단골 소재와도 닮아 기시감이 생긴다.

목소리를 낸 ‘햄릿’ 속 여성

영화 <오필리아> 스틸컷

초반부터 명화를 빌어와 시선을 사로잡는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을 재현한 듯 물속에 잠겨 있는 구슬픈 오필리아의 모습을 비춘다. 원작에서 오필리아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에서 착안한 이야기의 영리한 시작이다. 이어 오필리아(데이지 리들리)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며 당신이 아는 이야기를 전복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로써 총명하고 이성적이며 순수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오필리아가 왕비 거트루드(나오미 왓츠)의 눈에 들어 시녀가 된다. 어머니가 없이 아버지와 오빠 레어티즈(톰 펠튼) 사이에서 자란 평민 오필리아는 궁궐에 들어와 기품까지 갖추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 햄릿(조지 맥케이)이 오필리아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사랑을 속삭이며 끈질기게 구애한다. 그 와중에 엄마 거트루드는 자신만 따르던 왕자가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님을 깨닫고 절망한다. 성장한 아들을 꾸짖을 수 없던 거트루드는 시녀 중 가장 아끼던 오필리아를 은근한 감시로 옭아맨다.

거트루드는 덴마크 왕국의 왕비지만 정사에만 바쁜 왕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은지 오래라 외로웠다. 마침 아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울먹이고 있을 때 시동생 클로디어스(클라이브 오웬)의 구애로 전환점을 맞는다. 둘은 짧은 키스를 하고 이후 선왕의 승하와 클로디어스의 왕위 즉위식, 그리고 결혼식이 거행된다.

학업을 위해 왕국을 떠났던 햄릿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오지만 시신이 채 부패하기도 전에 속전속결로 진행된 가족 비극사에 몸서리치게 된다. 왕이자 숙부, 왕비이자 어머니, 숙모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하던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더욱 빠져들게 되고 결국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이후 선왕 죽음의 진실을 알아챈 오필리아가 햄릿에게 사실을 고하고 분노한 햄릿은 복수를 준비한다.

현대적 재해석의 명과 암

영화 <오필리아> 스틸컷

<오필리아>는 남성 중심 서사에서 주변인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오필리아, 거트루드를 당당히 주인공으로 끌어왔다. 반면 햄릿과 클로디어스는 두 여성을 뒷받침해 주는 조연으로 치부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껴간 《햄릿》 속에서 여성의 시점에서 다시 써 내려갔다. 누구의 아내, 여동생, 딸, 여자친구를 버리고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오필리아는 그저 햄릿의 연인이자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여성이었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변화했다. 거트루드 역시 오필리아의 젊음을 시기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마음껏 분출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점점 잃어가며 남편, 아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동화 속 왕비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백설 공주를 질투하는 새 왕비가 떠오를 만큼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한다. 시대극의 옷을 입고 있지만 현대적인 각색으로 세계적인 고전을 여성의 시선에서 필터링한다.

다만 시도는 좋았으나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는 게 흠이다. 두 여성의 선악 대결, 여성 간의 연대를 아우르는 여성 영화의 트렌드를 반영했음에도 매력적이지는 않은 이유다. 특히 거트루드의 숨겨진 비밀은 초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하지만 캐릭터의 활용에는 못 미친다.

야심찬 시도와도 다르게 후반부 힘을 잃어버리는 서사를 만회하기 위해 과감한 생략을 택한다. 각색의 방향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햄릿의 기본 골자를 따라가면서도 어딘지 모를 불편함이 동반되는 이유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도 묵인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선 햄릿의 유명한 대사와 선왕의 유령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유부단하고 사악한 남성 캐릭터보다 현명함과 강한 의지를 가진 오필리아의 선택이 더욱 눈에 띈다.

반면, 출연진의 화려한 캐스팅은 볼만하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히로인으로 등극한 데이지 리들리와 <1917>로 국내에 얼굴을 알린 조지 맥케이가 유명세를 치르기 전인 2018년 제작 영화다. 나오미 왓츠와 오웬 클라이브, 톰 펠튼까지 신구 세대의 조화가 조화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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