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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오징어의 미궁

작가 기시 유스케의 소설 <크림슨의 미궁>은 눈을 떠 보니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모이게 된 아홉 남녀가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을 펼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타인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보다 오히려 현실이 더 잔혹하다고 여긴다. 그는 실직과 이혼으로 하루아침에 홈리스가 되었다. 허나 자신의 인생이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오디션 게임을 보고 잔인하다고 말한다. 극한의 상황으로 사람을 몰아넣고 그 고통과 슬픔에 감동을 느끼기에 감정 포르노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작진이 정한 분량에 따라 합격여부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경연의 장이란 표현도 쓴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응모하는 건 이곳만큼 공정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오디션은 내가 왜 실패하고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전문가의 조언이라도 들을 수 있다. 현실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넷플릭스

서바이벌 데스 게임 장르의 <오징어 게임>의 주제의식은 <크림슨의 미궁>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훈은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두 번의 창업에 실패한다. 막대한 빚을 진 건 물론 아내마저 딸을 데리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철없는 중년인 그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엄마 돈을 몰래 가져다 한방을 위해 경마에 투자한다. 사채까지 끌어 써서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한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온다.

그것은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은 막다른 길에 몰린 실패한 인생들이 추억의 놀이를 통해 한 방을 노리는 이야기다. 총 456명이 참가한 이 게임은 최후의 1인이 456억을 가져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 추억의 게임을 해 탈락자를 정한다. 문제는 이 탈락이란 게 목숨을 잃는다는 점이다. 첫 게임을 마치고 데스 게임이란 걸 알게 된 참가자들은 동요한다.

그들은 게임의 규칙에 따라 과반 수 이상이 찬성할 경우 게임을 포기할 수 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 과반 수 이상의 찬성으로 게임은 멈추게 되지만 그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실이 더 지옥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크림슨의 미궁>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서바이벌 게임장에 갇힌 이들이 미궁에 갇힌 거처럼 표면적으로 보여주나 그 이면에는 진짜 미궁은 우리의 인생임을 보여준다.

인생이란 미궁은 내가 원해서 들어간 게 아니다. 시발점부터 갖고 태어나는 것이 다르며 같은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는 해답을 알 수 없는 미궁이 인생이다. ‘오징어 게임’의 관계자는 이곳을 평등사회라 말한다. 누구나 동일한 조건에서 게임을 할 수 있고 최종승자가 될 시에 주어지는 상품이 명확하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 종목을 알 수 없고 한 게임이 끝나면 모든 조건이 리셋 된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넷플릭스

때문에 막대한 빚을 갚을 길이 없는, 그 빚을 갚는다 하더라도 이후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이들은 이 게임장에 다시 돌아온다. 이런 작품의 주제의식은 연출과 각본을 맡은 황동혁 감독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데뷔작 <마이 파더> 때부터 탄탄하게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힘을 보여줬던 그는 캐릭터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구성하며 단단한 드라마를 만든다. 게임이 지닌 쾌감에만 주력해 막상 전개나 캐릭터는 허술해지는 데스 게임 장르의 단점을 보완한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기훈이다. 노련한 배우 이정재는 여전히 얼굴에 남아있는 소년 같은 매력으로 이 중년의 완패아(완전 패배한 아저씨)를 그려낸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철이 없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유쾌하고 의리가 있는 인물인 그는 예기치 못한 생존 본능을 보여준다. 인생 패배자의 위치였던 그는 타인의 도움을 받고 운이 따르는 등 이곳에 와서 예기치 못한 빛을 보게 된다.

우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이지만 본인의 생존이 달린 긴박한 순간에는 남을 속이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유년시절에 천진난만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 면을 지니고 성장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사회에서 도태된 감정이라 여기고 감추는 인간도 존재한다. 기훈은 이 감정을 지니고 있으면서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두려움 역시 내비치는, 동시에 나약하기에 생존을 위해 악과 분투를 보이는 캐릭터다.

기훈의 주변 캐릭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풍부한 드라마를 형성한다. 기훈의 동네 동생으로 머리는 좋지만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중요한 가치를 잊고 살아가는 엘리트 상우, 뇌종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기는 노인 일남, 돈이 있어야 모든 가족이 만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강한 염증을 지닌 새터민 새벽, 타인을 향한 믿음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외국인 노동자 알리 등 캐릭터를 통해 풍성한 드라마를 뽑아낼 수 있는 요소를 갖추었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넷플릭스

이 작품의 드라마는 진중하지만 미장센은 펀(fun)한 느낌이 강하다. ‘어른들을 위한 잔혹한 동화’라는 생각이 들 만큼 색감이 있는 미장센과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인다. 이는 현실과 대비되는 효과를 강하게 보여준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천국(상금)과 지옥(죽음)이 혼재된 게임장을 보여주며 빠져나올 수 없는 또는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미궁의 세계를 강하게 표현한다.

이런 장점을 지닌 황동혁 감독이기에 전개의 측면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의문은 그가 선택한 지나칠 만큼 전형적인 데스 게임 장르에 맞춘 전개가 극적 완성도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해당 장르에 대한 구성적인 능력이 부족했기에 다른 작품들을 참조했는지 하는 점이다. 도입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장면의 경우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신이 말하는 대로>에서 보여줬던 도입부와 같지만 그 나름의 독창성이 돋보였다.

반면 후반부 유리 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이 작품이 추구했던 어린 시절 놀이와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VIP들의 놀음을 위해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의식이었던 평등사회를 배반하는 요소를 넣으면서 오락적인 측면에 중시하는(또는 기존 데스 게임 장르의 클리셰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여줘 아쉬움을 남긴다. 데스 게임 장르의 전개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만큼의 쾌감을 뽑아내지 못한다는 점 역시 단점이다.

초반부의 흥미가 다소 어설퍼지는 건 형사 황준호 캐릭터에 있다. 준호는 형의 실종이 ‘오징어 게임’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알게 되고 잠입을 시도한다. 몰래 이들 중 하나가 된 그는 철저한 규칙과 규율로 움직이는 이들 중 하나가 된다. 문제는 이 점에 있다. 철저한 규칙과 규율이 있는 곳에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들어왔다. 헌데 그 어설픈 행동이 이상하게 잘 먹힌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의 허점이 발생한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넷플릭스

이 허점이 반복되다 보니 극적으로 지루함을 느끼게 만든다. 외부에서 내부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시도를 통한 긴장감 형성은 인상적이나 그 표현과 방법이 허술하다 보니 원하는 효과를 이뤄내지 못한다. 또 다른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데스 게임 장르의 대표작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주인공 기훈 역시 카이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나락으로 떨어진 삶+승부사 기질+우정이나 의리 같은 따뜻한 마음)가 있다.

이런 작품의 연출에서 중요한 점은 계속해서 흥미를 줄 수 있는 게임과 상황을 연출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게임이나 상황이 이전에 비해 흥미가 떨어지면 긴장감이 확 떨어진다. 초반 자극을 통해 세계관에 강한 몰입을 이끌어낸 만큼 피로도가 금방 누적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 ‘오징어 게임’에 이르러 그 긴장감이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 수렴한다.

비장미를 극도로 끌어올린 지점이나 막상 중요 인물들이 다 하차한 시점이기에 극적 흥미가 떨어진다. 가장 폭력적인 게임이고 상대를 죽여도 되는 게임인 만큼 마지막까지 긴장감 있게 이끌어 가는 게 좋은 선택처럼 보일 만큼 다소 허망한 구석이 보인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볼 때는 올바른 전개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회차를 거듭하는 드라마인 만큼 후반부가 동력이 떨어진다는 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징어 게임>은 후속편에 대한 여지를 남겨둔 마무리를 택했다. 장점도 단점도 뚜렷했던 만큼 단점을 보완한다면 더 근사한 시즌2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의 경우 데스 게임의 단순한 쾌감만을 생각했다면 후반부에 갈수록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서바이벌 게임보다 잔인한 미궁과도 같은 삶의 모습 속에서 인간적인 메시지를 듣고 싶다면 꽤나 인상적인 감상을 받을 것이다.

現 키노라이츠 편집장
前 씨네리와인드 편집장
前 루나글로벌스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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