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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강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가 무덤에서 박수칠 것 같은 신들린 각색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만 5회 노미네이트된 케네스 브래너가 2017년 작 <오리엔탈 특급 살인>의 과오를 만회하려 신경 쓴 티가 드러난다. 두 번 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을 골라 연기와 연출을 병행했다. 하나만 하기도 벅찬데 두 가지 일을 위해 혼신을 힘을 다했다 할 수 있다. 원작 소설, 동명의 1978년 영화, 영국 드라마 [명탐정 포와로] 시리즈 속 ‘나일 강의 죽음’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리메이크되었다.

밀실 살인의 용의자는 총 11명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20대 초반의 리넷 리지웨이(갤 가돗)는 친구 재클린 드 벨포르(에마 매키)와 연인 사이먼 도일(아미 해머)과 결혼한다. 파산한 사이먼의 취직을 부탁한 게 화근이었을까. 부와 빼어난 외모, 명석한 사업 수완까지 갖춘 리넷에게 연인을 빼앗긴 것이다.

리넷과 사이먼은 신혼여행지로 재클린이 그토록 꿈꾸던 이집트로 떠나 버린다. 가족과 지인을 초대해 화려한 결혼식 연회까지 이집트에서 할 계획에 부푼 신혼 부부. 하지만 배신과 복수에 사로잡힌 재클린이 따라와 스토커처럼 괴롭히기 시작한다.

한편, 이집트에서 휴가 중인 탐정 포와로는 의도치 않게 이들의 삼각관계에 관여하게 된다. 나일 강을 따라 항해하는 크루즈 카르낙에 승선하게 된 포와로. 행복한 신부이자 재산가지만 언제나 불안에 떨던 리넷은 포와로에게 지켜봐 달라고 당부한다. 사랑의 양면성을 아는 포와로는 묘한 말을 남기며 젊은 세 남녀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피라미드를 관광하고 돌아와 크루즈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귀신이 잡아가도 모르게 잠에 빠져버린 포와로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날 밤, 복수의 화신이 된 재클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이먼을 총으로 쏴 다리에 부상을 입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재클린은 제어하지 못할 비이성적인 행동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리넷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시체로 발견되고, 범인은 미궁에 빠진 채 모두가 용의선상에 있다. 과연 누가 범인인 것일까?

탄탄한 원작과 현대적 각색의 즐거움

특히 <나일 강의 죽음>은 실제 애거서 크리스티의 경험담을 담아 쓴 소설이기에 애착 정도가 다르다. 수많은 작품을 썼지만 그중에서도 《나일 강의 죽음》(1937)은 그녀가 살아생전 가장 사랑한 책이자, 젊은 시절 삼각관계를 토대로 아픈 경험을 녹여 낸 작품이다.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는 군인 남편이 전쟁에 출전하자 간호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군인 남편과 이혼 후 1930년 메소포타미아 여행 중 고고학자인 남편과 재혼한 후 작가적 재능을 펼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1890년 영국 데번에서 태어나 1976년 86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총 장편 66편, 단편 20편을 발표했다. 다양한 경험을 해봐서인지 작가적 재능과 더불어 소재와 배경도 다양하다.

특히 원작에는 없는 에르큘 포와로의 전사를 구축한 영리함이 한 몫 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기르게 된 이유와 제1차 세계대전을 엮어 캐릭터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는 오만하고 똑똑한 벨기에 출신 신사다. 완벽한 대칭의 콧수염이 특징이며 홀수를 용납할 수 없는 짝수 강박증에 시달린다. 스스로 붙인 별명이 회색 뇌세포일 정도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든 탐정 캐릭터 중 하나이며, 셜록 홈즈, 브라운 신부와 함께 세계 3대 명탐정으로 불린다. 그녀가 남긴 30편 이상의 장편과 50편이 넘는 단편에서 활약한 유명한 캐릭터다.

여행을 좋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그때마다 우연히 사건이 발생해 용케도 밥벌이 하게 된다.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고 습관을 관찰해 추리한다. 발품을 팔기보다 남겨진 단서와 증언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현대로 치면 프로파일러와 유사하다. 포와로는 대체로 중년의 작은 키와 퉁퉁한 체격을 가진 깐깐한 아저씨로 묘사되었는데, 케네스 브래너를 만나 큰 키의 푸른 눈의 포와로로 재창조되었다.

환상적인 연기 앙상블, 화려한 볼거리

영화는 무엇보다 각색에 공을 들인 이야기와 화려한 볼거리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리메이크의 품격을 높였다. 뼈대는 원작을 따르면서 성별, 나이, 인종, 직업에 변화를 주었다. 그러면서 변한 관계나 장면을 세련된 스타일로 변경했다.

이 때문에 살인 사건을 은폐한 중요 단서나 서로 만나는 접점도 수정되었다. 다수의 칼질에도 불구하고 유려한 서사와 입체적인 캐릭터는 원작을 뛰어넘어 풍부함을 더한다.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붙잡아주는 포와로의 활약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호화 유람선은 물론 초호화 캐스팅과 이국적인 비주얼까지 시선을 빼앗는다. 전 세계 4대뿐인 65mm 카메라로 담은 이집트와 나일 강의 전경은 웅장함과 매혹적인 풍경으로 볼거리를 선사한다. 초반부 재클린과 사이먼이 농밀한 춤추는 장면에 이어 리넷과 사이먼의 춤추는 장면으로 앞으로의 불행을 예고하는 복선마저 눈에 띈다.

단연 눈에 띄는 캐릭터는 크게 매력이 없었던 재클린이다. 신혼여행 파티에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으로 존재 자체가 긴장감을 유발하는 복수의 여신이다. 재클린을 연기한 에마 매키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와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했다. 리넷 역의 갤 가돗의 매력에서 밀리지 않는 존재감 때문에 매장면 재클린이 빨리 등장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살인 사건의 범인은 크루즈에 승선한 11명이다. 각각 리넷에게 모종의 앙심을 품고 있어 범행 동기가 있다. 하지만 완벽한 알리바이 또한 가지고 있어 프로 탐정 포와로를 뒤흔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포와로는 퍼즐 맞추듯 능수능란하게 범인을 찾아낸다. 원작자 애거서 크리스티를 향한 존경심이 솟아나는 21세기의 재해석의 한 예라 하겠다. 이런 영화를 두고 원작의 아성을 뛰어 넘는 작품이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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