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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유어 맨] 사이버펑크 시대의 사랑

사이버펑크(cyperpunk)는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에서 파생된 새로운 공상과학 장르로 그 용어가 시작되었다. ‘펑크’는 ‘펑크 록’ 운동에서 파생된 단어로 반권위주의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사이버와 펑크의 결합은 일반적인 기술과 문화의 발전에 대한 반권위적이고 반문화적인 운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언어의 사용범위는 넓어졌으나 기본적으로 기술의 발전에 대한 순응이 아닌 반감이나 저항을 뜻하는 의미를 지녔다고 보면 된다.

사이버펑크를 다룬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불행을 가져온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매트릭스> 시리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컴퓨터에 의해 양육되는 충격적인 세계관을 선보인 바 있다. 인간은 가상의 세계 ‘매트릭스’에서 살아가며 기계에게 모든 육체와 정신을 통제받는다. 일본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키라> 역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기계에 의해 양육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던 ‘매트릭스’ / HBO MAX

사이버펑크를 다룬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디스토피아의 세계관과 기계에 의해 통제 또는 고통을 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기술의 발전 자체가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 인간이 지닌 사유와 실존의 가치를 폄훼하며 기술적인 발달과는 별개로 다수의 삶은 질적으로 하락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세계관에 영향을 준 소설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를 들 수 있다.

이런 사이버펑크는 영화에서 체제에 대한 저항과 반감이란 측면으로 인해 주로 액션장르로 그려진다. 로맨스 장르에서 사이버펑크를 선보이지 않는 이유는 로맨스의 따뜻함과 감성적인 측면이 사이버펑크와 맞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트랜센던스>나 <트루먼 쇼> 같은 작품이 있으나 실존의 문제라는 드라마에 중점을 두었을 뿐 로맨스가 중점이 된 작품들은 아니다. 때문에 <아임 유어 맨>의 시도는 꽤나 흥미롭다.

이 독일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인 근본을 둔다. 고고학자인 알마는 인간 배우자를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을 테스트하는 실험에 참가한다. 이 실험에 참가한 목적은 연구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 목적은 그녀만을 위한 알고리즘이 형성된 휴머노이드 로봇 톰과의 3주 동거를 통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톰은 외형은 완벽한 인간이다. 여기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아임 유어 맨’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릴케의 시에서 몇 번째 줄 몇 번째 칸에 어떤 단어가 있는지 바로 튀어나올 만큼 톰의 인공지능은 뛰어나다. 인공지능은 투입-산출의 형태를 보인다. 프로그램 개발자 또는 인공지능 자체가 다수의 정보를 투입시켜 지식을 습득하고 산출해낸다. 다만 이 투입-산출의 형태가 매번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바둑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이 이길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여전히 인간에 비해 부족한 능력을 보인다.

그 이유는 정해진 공간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익힐 수 있는 바둑과 달리 스타크래프트는 그 전력과 심리전에 있어서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톰은 알마가 작성한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성형되었으나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이는 알마의 변덕 때문이 아닌 우주보다 깊다고 알려진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톰은 알마와 지내다 보면 그 알고리즘을 알게 될 것이라 여기지만 어려움을 겪는다.

이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알마가 톰을 연구팀에게 소개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톰은 알마와 그녀의 연구팀이 3년의 시간을 투자해 온 연구논문의 소재가 이미 몇 개월 전 아르헨티나에서 나온 논문과 같음을 알려준다. 이때 톰은 알마가 기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실수할 수 있는 걸 자신이 바로 잡아줬기 때문이다. 그의 알고리즘은 3년의 시간을 허비한 알마와 연구팀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톰의 모습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던 작품은 달달한 면모를 갖춘다. 톰은 알마가 아닌 인간의 감정을 우선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여긴다. 사칙연산을 못하는데 함수부터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듯 말이다. 알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배우는 톰은 알마를 위한 완벽한 로맨스 파트너가 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사이버펑크의 요소를 보여준다. 이 완벽한 로맨스 파트너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위험을 조명한다.

‘아임 유어 맨’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알마가 실험에 참여한 건 그녀가 파트너가 없는 미혼이자 사랑의 상처를 가졌기 때문이다. 연애세포가 완전히 죽어버렸기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통한 파트너 사업을 위한 대상으로 제격이다. 알마는 자신의 슬픔을 안아주면서 완벽하게 마음을 사로잡을 남자를 못 만나게 될 것이라 여겼다. 로맨스 장르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케미’다. 케미는 한 쪽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이다. 사랑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필요하다.

실험 소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알마는 중독의 무서움에 대해 말한다. 담배, 술, 마약과 같은 물질은 강한 중독을 일으킨다. 인간이 건강에 큰 피해를 입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 중독에 빠지는 건 쉽게 쾌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허와 고독 같은 슬픔의 정서를 잊기 위해 중독을 택한다. 사랑 역시 그럴 수 있음을 알마는 경고한다.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쉽게 찾게 되면 그 쾌락에 빠지게 된다.

사랑에 중독이 되면 남을 배려하고 다른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의 인류는 완벽한 로맨스 파트너에 빠져 타인은 물론 자신마저 돌보지 않게 될 수 있다. 외부적으로 어떠한 불행이나 부당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위로와 위안만 주는 사랑에 빠져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 이것은 <매트릭스> 시리즈가 보여줬던 기계에 의해 양육되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철학적인 메시지를 더하기 위해 톰의 캐릭터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사이버펑크의 대표작인 <공각 기동대>는 사이보그를 등장시키며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한 심도 높은 질문을 던진 애니메이션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기계가 인간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배우기에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의 지배욕과 폭력성을 닮은 기계가 등장할 수도 있다.

‘아임 유어 맨’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인간의 감정을 배운 톰은 사랑을 이해함과 동시에 한 가지 중요한 건 알게 된다. 바로 실존의 문제다. 톰은 알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졌다. 도입부에서 알마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한 번 고장을 겪었던 톰은 다시 업그레이드가 되는 웃픈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톰에게 알마는 더는 그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순간 톰이 느끼는 건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이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인공지능을 지닌 기계가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 가치의 문제는 알마의 아버지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치매에 걸린 알마의 아버지는 시설이 아닌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옛 집에서 생활한다. 이는 알마의 뜻이기도 하다. 알마는 아버지가 지내는 낡은 집이 별 볼일 없다는 듯 말하는 경찰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실존을 위해 가치를 추구한다. 추억이나 관계에 집착하기도 하고, 인정의 욕구를 위해 명함이나 직위를 얻고자 한다.

알마는 아버지와 집이 자신의 실존을 이뤄주는 인물이자 공간이라 여긴다. 이 감정은 톰이 알마에게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톰은 알마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한다. 그런 알마가 자신을 거부한 순간 그는 혼란을 겪는다. 알마가 보여준 건 기술과 기계에 대한 반감이지만 그 반감이 맞닿은 건 인간의 감정이다. 이 순간 작품은 사이버펑크 시대의 사랑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내며 어쩌면 미래세대가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준다.

<아임 유어 맨>의 질감은 <그녀>와 유사하다. <그녀>가 인공지능 사만다와 아내와 별거 중인 대필작가 테오도르의 사랑을 그린 거처럼 기계와 인간의 유대감과 사랑을 그린다. 차이라면 여기에 더해진 사이버펑크의 요소다. <그녀>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바탕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란 메시지를 담아냈다면 <아임 유어 맨>은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 복잡한 디스토피아적인 사랑에 대한 진중한 담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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