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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끝에서 널 기다려] 엉성한 타임슬립과 지고지순한 사랑의 케미

우리나라에서 최근 중화권, 특히 대만 로맨스 영화가 강세다. 일본의 90년부터 2000년대 초반 영화에서 보여준 로맨스에 판타지를 가미한 모양새다. <시간의 끝에서 널 기다려>도 딱 그러한 영화다. 물건의 포장을 뜯었을 때 익숙한 기성품의 냄새 사이에서 손으로 만져보면 미세하게 느껴지는 수공예의 차이점이 느껴지는 분위기다.

어디서 많이 본 줄거리, 로맨스물의 강점인 순수함과 지고지순한 사랑, 하이틴의 삼박자를 기본으로 깔면 대강 틀이 갖추어진다. 여기에 시간 여행의 판타지 MSG를 첨가하며 먹을만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주방장 재량이 빛을 발하는 음식처럼 익숙한 맛이 지겹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침샘이 폭발하는 음식처럼 말이다.

치우첸(이일동)과 린거(이홍기)는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 사이였다. 치우첸이 전학을 가면서 둘은 헤어지지만 치우첸이 돌아오며 고등학교에서 재회한다. 예전의 기억을 때문일까.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린거의 생일날 둘은 생일을 가장한 데이트로 행복한 날을 보내고, 머뭇거리다 고백하려던 순간 눈앞에서 치우첸을 교통사고 잃고 절망한다. 린거는 자신을 탓하며 치우첸을 잃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지만 치우첸은 린거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후 린거는 치우첸의 시간을 되돌리는 대가로 자신의 시간을 저당 잡힌다. 본인의 시간을 사랑하는 연인의 시간으로 당겨쓴 탓에 늙어버린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치우첸은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서 자기 앞에 나타난 린거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음은 아프지만 치우첸을 살린 것에 만족한 린거는 10여 년은 훌쩍 지나 버렸음에도 바보같이 흡족하다.

그냥 치우첸의 옆에서 있는 듯 마는 듯 곁을 맴돌는 것만으로도 좋다. 하지만 몸이 기억한다는 말처럼 치우첸과 엮이며 사랑에 빠진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린거는 치우첸이 성공하길 누구 보다 바랐다. 하지만 유학갈 형편이 안되는 치우첸의 사정을 알고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하며 유학까지 보내준다. 그 뜻이 통한 걸까. 치우첸은 발레리나로 성공하지만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하고 이번 생에도 또다시 시간의 끝을 함께 하지 못한다.

<시간의 끝에서 널 기다려>는 <말할 수 없는 비밀>(피아노)이나 <어바웃 타임>(옷장)처럼 시간 판타지 소품으로 시계가 등장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소품으로 나침반처럼 생긴 시계라니 다소 직관적인 타임머신이나, 사랑하는 연인이 준 선물이기 때문에 소중하면서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한국제목이 의미심장함을 잘 살렸다. 시간의 끝이라함은 죽음을 의미하는데 죽음을 전복하는 마법이 시작되는 끝과 시작의 무한반복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 수 있는 린거는 30대에서 40대, 50대가 되어버린 린거는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자신을 치우첸이 알아봐 주어야지만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아버지, 절친한 친구, 연인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내가 사라져 버린 후에도 나를 증명해 주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린거는 지금까지 겪은 일은 소설을 가장한 일기로 다듬어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고 이를 치우첸이 읽어간다.

역사란 무릇 일어난 사건과 시간의 경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일어난 일을 기록해야 만 한다. 이 기록이 세월이 지남에도 살아남아 누군가에 의해 다시 거론된다면 역사적 가치로 환산되는 것이다. 린거는 지금까지 겪은 기이한 일을 기록하게 되었고 이는 시간이 뒤틀리며 본인이 없는 세상에도 이야기로 남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시간의 끝에서 널 기다려>는 시간을 소재로 했지만 많이 엉성한 설정을 탓하기 전에 한 수 접고 들어가야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시간 여행 영화 중에서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각본의 허술함이 크지만 두 배우의 청초함과 애틋함을 무기로 한껏 달달함을 끌어올릴 수 있다.

대놓고 따라 한 오마주를 한껏 첨가해 ‘우리 영화가 이런 콘셉트다’라는 설명을 초반에 깔아 놓는 친절함을 보인다. 눈치챈 관객도 있겠지만 이스터에그로 등장한 영화 포스터 때문에 조금은 상쇄할 수 있다. 초반부 노인이 된 린거가 쓰러져 치우첸이 그의 집에서 갔을 때 벽에는 <미드 나잇 인 파리>, <어바웃 타임>, <도라에몽>, 사전징후를 소재로 하고 산드라 블록이 주연인 <프로모니션>, 성인 연기자로 변신한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주연의 <과거를 찾아서>의 포스터가 보인다. 린거는 어릴 적 둘이 발견한 시계가 시간 여행을 돕는 설정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된 영화를 보고 매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어떤 구간으로 갈지 어떻게 되돌릴지 연구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다이어리를 잃어버리거나 물에 빠트리고 불에 타버리면 그만이지만 영화는 끝까지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취한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종이에 손글씨로 쓴 이야기가 아직은 유효한 가치로 환산됨을 주목했다. 일편단심,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하늘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다음 생에도 당신과. 이러한 구구절절한 사랑의 표현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너무 오래 지낸 솔로 생활의 무미건조함을 걷어내고 싶은 관객, 말도 안 되지만 나만 감동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관객, 프라하의 이국적인 풍경으로 여행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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