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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길들여지지 않을 자유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스피릿>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2002년에 개봉했던 동명의 작품이 제시한 배경과 캐릭터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의 모험 서사를 꾸려냈다.

2002년의 <스피릿>은 물론, TV 시리즈로 확장되어 나온 ‘스피릿’까지 여러 번 돌려봤을 만큼 이 이야기의 팬이라는 일레인 보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트롤 헌터>, <드래곤 길들이기 – 드래곤 경주의 시작> 등 주로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여성 감독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스피릿> 역시 일차적으로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듯한 인상도 받았으나, 주인공 ‘럭키’를 비롯한 삼총사, ‘코라’ 고모, 그리고 아버지 ‘짐’ 등 캐릭터들의 입체성이 상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장르적인 문법을 활용하는 등의 면모가 돋보이기에 어린이 관객만을 노렸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코라 고모(줄리안 무어)와 함께 살던 럭키 프레스콧(이사벨라 머세드)은 방학 동안 어머니의 고향이자 아버지 짐(제이크 질렌할)이 있는 미라데로 마을에 방문한다. 마을로 향하는 길, 기차에서 럭키는 창밖에서 벌판을 달리는 한 무리의 야생마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야생마 ‘스피릿’과의 첫 만남이다. 흔한 버디 무비에서 제대로 된 첫 만남 전 깔아 두는 복선이기도 하지만, 이 장면의 핵심은 달리는 기차의 속도감을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서부극에서나 볼 법한 황무지를 달리는 기차, 그를 뒤쫓는 야생마들의 무리가 2D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광경은 제법 신선하게 다가왔다.

럭키의 엄마인 밀라그로(에이사 곤잘레스)는 마을의 말 곡예단에서 활동하던 기수였는데, 말을 타다가 죽었기 때문에 럭키의 아빠인 짐은 딸이 말에서 최대한 멀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개 사연 있는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럭키는 미라데로에 오는 길에서부터 말에게 강하게 이끌리고, 마을에 도착해서 카우보이들이 야생마들을 험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서는 직접 고삐를 풀어주는 등, 결국 엄마가 걸었던 길로 향하게 된다. 짐과 럭키는 이로 인해 대립하게 되는데,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모험심 강한 딸의 대립은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서사이다. 그러나 <스피릿>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이 관계성과 야생마와 사람, 즉 스피릿과 럭키의 관계를 병치시켜 놓는다는 점이다. 야생마 스피릿이 럭키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 발 물러서면 한 발 다가오는’ 이 관계를 카메라는 말과 사람의 발을 클로즈업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해당 장면에도 역시 서부극에 쓰일 법한 음악이 더해져 재치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야생마를 풀어주고 카우보이들을 견제하는 럭키에게 짐은 마을엔 암묵적인 룰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카우보이들은 주인이 없는 야생마들을 잡아다가 파는 사람들인데, 따지고 보면 야생마들은 원래 자연에서 주인 없이 사는 존재들이라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마을에서 규제를 할 명분이 없는 것뿐이다. 야생마 스피릿을 비롯해 그의 무리와 유대감을 형성한 럭키는 당연히 카우보이들을 두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아버지와의 갈등이 또 발목을 붙잡는데,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야생마와 얽힌 갈등 상황과 아버지와의 갈등이 맞물린다. 카우보이들을 내버려 두는 ‘마을의 암묵적인 룰’, 그리고 말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룰’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짐도 아내의 죽음이 사고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갈등은 해결되지만, 모험에서 얻게 되는 값진 메시지는 바로 이 룰들에 묶여 있지 않을 자유이다. 애초에 럭키는 스피릿을 타는 내내 안장과 고삐를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역시 주목해 볼 만하다.

럭키는 사건이 모두 해결되고 난 후 스피릿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데, 스피릿에게 ‘우리는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스피릿에게 야생마 무리가 있듯, 럭키에게도 함께 살아갈 가족들이 있다는 것. 여기에는 미라데로에 와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포함된다. 프루와 아비게일은 모험을 같이 떠나자는 럭키의 무모한 계획에 찬성하지 않았으나, 어쨌든 함께 길을 걷기로 선택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감독은 야생마 스피릿과의 우정, 그리고 미라데로 마을 삼총사의 우정을 동시에 비추기로 한다. 이렇듯 <스피릿은> 단순한 모험 이야기, 버디 서사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짧은 러닝타임 안에 알뜰하게 챙기는 영화다. 원제인 ‘Spirit: Untamed’에 언급된 것처럼 untamed, 길들여지지 않을 자유에 대해 익숙한 듯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글: 키노라이츠 손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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