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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워터] 잔잔한 수면 아래 감춰진 후폭풍

딸에게 믿음을 얻지 못한 아버지가 있었다. 빌(맥 데이먼)은 과거 석유 시추 회사에 다녔지만 알코올과 약물 중독자로 전락했다. 전과 이력까지 겹쳐 투표조차 할 수 없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상태다. 생계를 위해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동네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뒤섞여 잔해를 치우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빌의 딸 앨리슨(아비게일 브레스린)은 몇 년 전 가까운 대학을 놔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러 프랑스 마르세유 행 비행기를 탔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룸메이트를 죽인 혐의로 9년 형을 선고받고 5년째 감옥에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는 물건을 챙겨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만난 딸은 변호사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아버지는 어렵사리 변호사를 만나지만 5년 전 종결된 사건이라 재심이 어렵다는 성의 없는 답변을 받는다. 안타까운 소식을 그대로 전할 수 없던 아버지는 딸에게 재수사에 착수했다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된 딸. 처음부터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 답답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법이 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4년을 더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딸의 미래가 나처럼 어둡기만 하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게 못난 아비의 몫이고 자식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

실화의 힘을 확인하는 탄탄한 이야기

영화 <스틸워터>는 살인자로 몰린 딸의 결백을 위해 가진 것 없는 아버지가 힘겹게 싸워가는 이야기다. 칼날 같은 서스펜스와 드라마적 재미, 따스한 인간애와 돋보인다. 아카데미 2관왕을 안겨준 <스포트라이트> 이후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는 작품을 또다시 선보인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신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사건을 추적하고 인물 간의 갈등과 유대 형성에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다. 제74회 칸영화제에 공개되며 호평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천재, 과학자 등 엘리트 역할을 주로 맡아온 맷 데이먼의 흙수저 변신에 많은 공감과 찬사를 받았다.

토마스 맥카시 감독은 2007년 이탈리아 여대생 살인사건, 아만다 녹스 사건으로 유명한 미국인 교환학생의 실화를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 언론은 사건을 떠들썩하게 물어뜯기 바빴을 뿐 그 이면과 진실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이에 영감받아 문화와 언어 차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을 담아 초고를 써 내려갔다. 원색적인 단어로 얼룩진 사건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만들어 내고 싶었던 거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뼈대와 마찬가지다. 탄탄한 이야기는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해도 좋다. 감독은 영화의 배경을 이탈리아에서 지중해 항구도시 마르세유로 옮겨와 다양한 인종이 한데 모여 만든 문화의 차이를 담백하게 그리고자 했다. 인종 및 성소수자 차별 문제 등 사회적 이슈까지 아우르며 시나리오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딸의 무죄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아버지

영화는 연이은 실망으로 아버지를 믿지 않는 딸과 회복의 어려움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가까운 오클라호마의 주립대학을 놔두고 먼 프랑스로 떠난 딸이 이해되지 않았던 아버지는 타국에서 딸을 만나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아버지를 향한 불신뿐만 아니라 엄마의 죽음마저도 아버지 탓으로 돌리는 딸은 아버지를 부단히도 원망하고 미워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아버지는 굴복하지 않고 직진한다. 신뢰를 회복하고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스스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다는 무식한 아비는 딸의 결백을 믿고 직접 해결에 나선다. 이 과정이 순탄치 않지만 현지인 버지니(카밀 코탄)와 딸 마야를 만나 도움받는다. 모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에서 든든한 조력자로 힘이 되어준다. 모녀는 아무 대가 없이 빌을 도우며 호의, 휴머니즘과 믿음을 확인해 나간다.

빌은 이들과 지내며 이방인과 현지인, 미국과 프랑스의 언어, 문화, 사고방식의 차이를 깨닫는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것 당연지사, 괜한 오해를 사며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미국인이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에 수치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타국에서는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빌은 어두웠던 과거를 서서히 잊고 모녀의 밝은 에너지를 받으며 심경의 변화를 맞는다. 이와 맞물리는 두 도시의 빛깔은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빌의 과거가 묶여 있는 오클라호마는 회색빛의 정체된 분위기인 반면, 마르세유는 푸른색이 넘실대는 청량하고 활기찬 기운으로 가득하다.

아버지는 다시없을 기회를 얻어 진실을 위해 끈질긴 추적을 벌였다. 그러나 때론 진실은 정의롭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실체에 다가갈수록 원했던 답과 멀어지는 아이러니다. 비밀을 품은 진실은 덫에 걸린 것처럼 질척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질곡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이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고향 스틸워터를 답답해하는 딸과 너무 변해 버려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아버지의 대비되는 태도로 발현된다. 분명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말을 내뱉고 있는 어색한 부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먹먹하고 고요한 잔잔한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는 후폭풍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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