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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쉬 피자>스물다섯, 열다섯의 사랑 이야기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따듯하고 발랄한 영화로 기록될 것 같다. 유럽 3대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유독 미국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에 이름을 올려 수상 여부가 기대된다.

감독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다. 그는 20세기 미국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감독 중 하나다. 인물을 낭떠러지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요함, 사회를 향한 신랄한 비판, 진지한 고민이 엿보이는 스타일로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주의 감독이다. 미국 역사를 가로지르는 서사와 이면, 뒤틀린 심리를 다뤄 작품이 다소 난해하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그가 만들면 어떤 장르도 집착, 욕망, 광기로 소화해 무서울 정도다. 러브 스토리도 결국 인물의 바닥을 확인하고야 만다. 그 예로 <팬덤 스레드>가 그랬는데 ‘이 죽일 놈의 사랑’이란 말이 입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번 영화는 스스로 즐겼다고 느꼈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리코리쉬 피자>는 필모그래피 중 <펀치 드렁크 러브>와 비슷한 결이지만 그보다 더 발랄함을 가졌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시절, 찬란한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물다섯에 열다섯을 만나다,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25세 알라나(알라나 하임)를 사랑하게 된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의 고군분투다. 두 사람을 메인으로 하지만 여러 등장인물의 서사도 중요하게 펼쳐진다. 사진관 조수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알라나는 졸업사진을 찍어주다 10살 연하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는다. 이런 애송이한테 관심을 받다니 싶었지만 소년은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미성년답지 않게 직업에 자긍심을 가진 아역 배우였다. 어렸지만 지금껏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일찍 한 탓에 눈치도 빨랐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재주를 가졌다. 긍정적인 성격과 호감형 얼굴로 주위 평판도 꽤나 훌륭했다. 수려한 언변과 귀여운 애교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지만 알라나는 그냥 동생으로만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둘 도 없는 사이가 된다. 오디션에 보호자로 따라가고, 물침대 사업을 돕고, 핀볼 게임장 구상도 함께하며 내면이 단단해진다. 동생과 누나, 연인과 친구, 매니저와 배우, 그 사이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던 간격을 좁혀 차츰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다 왔다고 생각하면 달아나 버리는 썸 타는 관계인 탓에 질투심 유발 작전을 펼쳐 상처받기도 하나, 진심을 확인하며 나이 차이를 극복해 간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대중적인 작품

<리코리쉬 피자>는 자신의 유년 시절과 고향을 향한 러브레터다. 피자 가게 이름인가 싶은 아리송한 제목 뜻은 당시 켈리포니아 일대의 레코드 체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모든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직접 하는 것으로 알려진 감독은 이번 영화에 한 가지를 더 첨가했다. 마치 리코리쉬라는 서양 감초의 역할처럼 없어서는 안 될 자신만의 감성 말이다.

실제 본인과 지인의 경험을 더해 유쾌한 청춘 이야기를 완성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무장했다. 당시를 잘 몰라도 관객 각자의 유년을 소환하는 매력으로 꽉 차 있다. 청춘의 방황과 성장을 귀에 익은 OST를 통해 풋풋함은 덤이다. 1970년 대 명반이 대거 수록되어 있어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선물 같은 영화다.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의 배경이자 감독과 알라나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샌 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한다. 두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데뷔했으며 캐릭터를 위해 메이크업을 일절 받지 않고 민낯으로 열연해 극도의 사실성을 더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친구, 선배, 동생처럼 친근하다.

덧붙이자면 알라나는 실제 자매 밴드 ‘하임’의 막내 멤버고, 쿠퍼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순전히 신예 알라나 하임과 쿠퍼 호프만을 위해 대배우를 병풍처럼 활용한 점도 돋보인다. 손 펜, 브래들리 쿠퍼, 톰 웨이츠, 베니 샤프디 등 적재적소에 등장해 두 사람의 미묘한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로 긴장감을 더해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살 연상연하 커플의 좌충우돌 성장을 멀리서 지켜보는 흐뭇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알라나가 차례로 만나는 성인 남자들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삶을 살아가는데 경험만큼 중요한 게 없음을 알게 되는 체험이다. 개리도 점차 성장한다. 어린 나이지만 과감한 시도로 사업에 도전하고 망하기도 하며 세상을 알아간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요즘 사람들에게 <리코리쉬 피자>는 잃어버린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넘나드는 타임머신이 되어준다. 아주 가끔이지만 좋은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때로는 축복과도 같다. 여운이 이어져 삶의 일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본인의 10년이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잊고 있던 무엇을 소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영화도, 겨울의 끝자락에서 낭만을 꿈꿔 보기도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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