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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과 성악설

<더 헌트>라는 영화가 있다. 이 작품은 한 소녀가 한 거짓말 때문에 고향에 돌아온 남자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거짓말보다 더 무서운 게 동심을 지닌 듯한 편견이다.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깨끗하고 맑다. 나쁜 건 어른이다. 최근 소년법이 문제가 되고 있다.(참고로 소년법과 청소년 보호법은 서로 다른 법이다.) 소년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이 법의 핵심은 위의 정의의 두 가지 단어에 있다. 품행 교정과 보호처분.
  
청소년은 나이가 어리기에 교육에 따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래서 청소년 범죄자가 향하는 소년원은 처벌보다는 품행 교정의 목적이 크다. 또 청소년들이 교도소에서 범죄자들에 의해 물들지 않게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도 담겨 있다. 그런데 이런 소년법에 대한 반발이 최근 심해지고 있다. 청소년 범죄의 수준이 높아졌다. 폭행, 감금은 물론 인신매매도 감행한다. 더군다나 인터넷을 통해 미리 처벌받을 형벌을 찾아보고 그 수위에 따라 폭력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다. ‘내 나이가 처벌을 낮게 받을 나이네? 그럼 제대로 범죄를 저질러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정신건강에 나쁜 만화 <원한 해결 사무소>를 보면 소년법을 이용, 집단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들이 등장한다. 멕시코의 경우 아이들을 납치, 킬러로 키운다. 아이들이기에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아들> 스틸컷 / 20세기 폭스

소년법에 따르는 의문은 여기 있다고 본다. ‘인간은 모두 착한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선한 본성을 타고 난다는 성선설.(연못에 빠지려는 아기를 보면 누구나 구하려고 든다. 그건 교육에 의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착한 본성 때문이다.) 태어난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백지설.(성무선악설과 상통하는 개념으로 인간의 타고난 마음은 백지와 같아 환경 또는 교육에 따라 달라진다는 견해다.)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도덕성을 길러야 한다는 입장의 성악설이다. 이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나홀로 집에>의 귀여운 꼬마 맥컬리 컬킨이 악랄한 꼬맹이를 연기한 <좋은 아들>이 그 주인공이다.
  
꼬마 마크는 엄마가 죽으면서 삼촌집으로 가게 된다. 아빠가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삼촌 월리스의 집에는 그와 동갑내기의 헨리가 있다. 같은 나이 또래라 자연스럽게 절친이 된 두 사람. 마크는 이 집에서의 생활이 즐겁다. 마치 엄마처럼 다정한 월리스의 부인 수잔이 좋고 헨리의 여동생 코니도 좋다. 그러던 어느 날 마크는 헨리의 비밀을 알게 된다. 헨리는 개를 잔인하게 죽이고 자신이 만든 총으로 차를 쏴 대형 사고를 일으킨다. 마크는 이 사실을 말하나 사람들은 엄마가 죽은 충격과 죄책감에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거라 단정한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가 그런 사고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저지르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그런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헨리는 계속 저지른다. 자기 동생을 스케이트장 얼음 아래로 빠뜨려 익사시키려는 짓까지 하는 헨리. 마크는 이 사실을 수잔에게 말하나 오히려 혼이 난다. 

<좋은 아들> 스틸컷 / 20세기 폭스

최근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말이 ‘싸이코패스’다. 이 싸이코패스의 특징은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감정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쾌감 외의 감정, 그러니까 죄책감이나 우울, 긴장이나 걱정 따위는 품지 않는다. 며칠 전 보았던 기사에서도 그랬다. 한 20대 남성이 술집에서 처음 만난 여성에게 성관계를 요구했고 거절하자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다. 잡혀간 그를 조사한 결과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였다. 그는 성관계라는 목적을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함에 있어 그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던 것이다. 헨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즐거움을 위해 개를 죽이고 대형 사고를 낸다.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한 여동생을 죽이려 들며 마크와 잔인한 살인 게임을 진행한다. ‘난 계속 범죄를 저지를 거야.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 이게 어린 아이의 머리에서 나올 생각일까.
  
헨리는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 이미 첫 살인을 저질렀다. 셋째가 태어나자 셋째에만 정신을 쏟는 게 싫어 막내 리처드를 죽인 것이다. 싸이코패스의 또 다른 말은 극단적 이기주의자이다. 상황맥락에 관계없이 모든 게 자기 위주여야 하고 자기 감정이 최우선이다.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극적인 게임을 즐긴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진짜 ‘성악설’의 증거가 아닌가 싶다. 최근 한국 사회는 이런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지닌 싸이코패스들에 경악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사람을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패며 매장이나 인신매매를 논한다. 심지어 처벌에 있어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을 모의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낮은 처벌을 받아낸다. 그리고 이 낮은 처벌에 소년법이 이용된다.
  
이 영화의 결말이 인상적인 건 이 점에 있다. 국가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높은 재범율과 갈수록 교묘해지는 범죄에 속을 썩고 있다. 사회적으로 교화되지 못하며 전과기록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영화는 이에 대해 극단적인 결말을 택한다. 헨리는 자신의 정체를 안 엄마마저 죽이려고 든다. 그리고 이를 막으려는 마크와 사투를 벌이다 두 사람 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엄마는 두 사람을 붙잡는다. 하지만 어린 아이 두 사람을 끌어올리기엔 힘이 부족한 수잔. 본디 ‘엄마’라면 아무리 아들이 범죄를 저지른 ‘살인범’이라도 감싸주고 사랑할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 들어도 그 사실을 숨기고 위증을 하는 게 엄마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좋은 아들> 스틸컷 / 20세기 폭스

<마더>를 생각해 보라. 엄마는 아들의 죄를 덮어준다. 엄마는 한때 아들과 몸을 공유했다. 아빠와 아들은 몰라도 엄마와 아들은 그 사랑에 있어 특별하다. 그런데 수잔은 헨리 대신 마크를 택한다. 이는 상당히 충격적이며 ‘저게 뭐야?’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분명 영화는 헨리와 마크, 두 사람을 모두 살리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헨리의 개과천선을 예고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영화는 <나쁜 종자>처럼 종자론을 탓하거나 <케빈에 대하여>처럼 아들의 내면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리적인 복잡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간단하게 모든 문제에 대한 결론을 말한다. ‘죄를 저질렀잖아. 넌 그에 대한 벌을 받는 거뿐이야.’ 이는 감정이 갈라진 싸이코패스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감정적인 여지도 없이 죄에 대한 처벌만을 택한다. 소년법의 문제는 잘못에 여지를 둔다는 점이다. 개선의 여지가 있기에 가해자 위주의 온화한 처벌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희석되고 외면당한다.
  
영화 <오늘>에서 약혼자를 오토바이 사고로 잃은 다큐멘터리 PD 다혜는 말한다. ‘그때 주변에서 용서만을 답이라 말하지 않았다면 용서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녀는 가해자 소년을 용서해 주었고 소년은 출소 후 사고를 쳤다. 만약 그때 내가 그 애를 용서해주지 않았다면 약혼자처럼 또 다른 피해자는 나오지 않지 않았을까. 모든 사람이 착할 수는 없다. 전과자 쌓이면 쌓일수록 처벌은 강해져야 한다. 사회에 교화될 수 없는 사람을 자꾸 풀어주는 건 또 다른 범죄를 조장하는 국가의 방조나 다름없다. 소년법은 ‘나이’만을 이유로 여지를 둔다. 나이 때문에 몰랐던 시절은 사라졌다. 소년법 개정은 새로운 화두이며 청소년 범죄를 조금이나마 예방하기 위한 전제라고 본다. <자유로운 세계>에서 싱글맘 엔지를 철두철미한 자본가로 만든 건 법의 ‘여지’였다. 불법 이주노동자 인력소를 운영해도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법의 여지 때문에 그녀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년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처벌의 논리는 간단하다.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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