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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버그] 국가의 표적이 된 20세기 아이콘

영화 <성 잔 다르크>의 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세버그>는 20세기 할리우드 아이콘이던 진 세버그의 다사다난 했던 일생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그녀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았으며 연기에 진심으로 임했던 배우이자 활동가였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한 의혹과 이미지 왜곡으로 얼룩진 진 세버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다큐멘터리나 전기 영화 형식을 취하지 않고 상상력을 더했다. 드라마적 구성을 취하다가도 어느새 심리. 범죄 스릴러가 혼합된 복합장르를 표방한다. 가상의 인물인 FBI 요원을 통해 이중 감시의 위험 속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훔쳐보는 듯한 관음의 시선과 불편함을 유발한다.

이 모든 것을 21세기 아이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100% 싱크로율로 이끌어 간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젊은 배우로 떠오르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추가하는 셈이다. 시대를 앞서간 헤어스타일, 패션 감각, 사회 이슈에 반응하는 민감함, 숨지 않는 당당함, 그리고 천상 배우라는 점이 진 세버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국가 표적이 된 세기의 배우

1938년 미국 아이오와 출신의 진 세버그는 오디션을 통해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성 잔 다르크>(1957)로 데뷔한다. 진 세버그는 현대판 신데렐라로 수백만 미국인의 일탈을 책임지는 뮤즈였다. 파란만장했던 일생 중 영화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1960년대 누벨바그의 아이콘으로 거듭나 할리우드와 프랑스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1968년부터 시작한다.

당시 프랑스는 68혁명으로 어수선했다. 68혁명이란 유럽에서 가장 큰 움직임이었다. 미국을 향한 베트남 반전 시위로 대학생의 주도하에 국민의 지지를 얻은 사회변혁운동이다. 이후 여성해방, 미국 반전, 히피 운동 등 다양한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며 불안한 진동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 시각 미국에서는 흑인 인권 운동이 한창이었다. 흑표당의 활동가이자 말콤 X의 사촌 동생인 하킴 자말(안소니 마키)은 일부러 진 세버그가 탄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려 이목을 끈다. 이를 본 진 세버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들 성명에 지지를 표명한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진 세버그는 이미 14살에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회원이었다. 비행기에서의 일화 이후 흑표당을 본격 지지하며 금전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세계적 스타가 되어서도 관계를 이어갔다.

이는 곧 FBI의 표적임을 암시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자초했다고 말할 수 있다. FBI는 치밀한 계획으로 불법 도청, 사찰, 미행 등 코인텔프로(COINTELPRO 미국 내 저항조직 감시)를 24시간 실시한다. 이를 모른 채 진 세버그는 하킴 자말과 밀애부터 정치적 지지, 후원 정황까지 그대로 노출돼 감당하지 못할 나락으로 떨어진다.

시대의 불운에 희생당한 개인

영화는 최고의 배우가 어떻게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되는지를 낱낱이 훑는다. 그녀의 인생을 반추하며 지금도 변함없는 인권 유린과 개인의 희생을 곱씹어 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타의 아픈 인생은 당시를 살았던 여성의 고통을 날 것 그대로 빨아들인 리트머스지 같다.

배우는 종종 맡은 캐릭터와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기에 평판 흠집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한번 나빠진 이미지는 개선되기 어렵고 점차 일거리가 줄어들며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진다. 진 세버그는 FBI의 존재를 알아차린 후 누군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의심과 신경쇠약으로 나날이 미쳐가게 된다. 이로 인해 어렵게 쌓아 올린 경력과 결혼 생활까지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이후 자살 시도와 둘째 딸의 사망 등 연이은 사고가 짓누르며 세기의 아이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진 세버그를 다룬 영화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진 세버그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중년의 남성이다. 옆에서 조력자와 관찰자로 서성이는 그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외교관, 비행사이기도 했던 로맹 가리다. 노벨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랑스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았던 유일한 작가다. 한 번은 본명으로 한 번은 필명인 에밀 아자르로 받았다. 영화에서는 그저 유명 배우의 남편으로 등장하지만 진 세버그와 그의 결혼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면 달리 보이게 된다. 아내였던 진 세버그가 FBI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그녀가 죽고 최초로 폭로한 사람이다. 아내가 죽고 1년 후 권총으로 자살해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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