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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웅> 사소한 거짓말이 불어나 기회를 망친 한 남자

어지러운 세상에 홀연히 등장한 영웅은 세상을 구하고 정의를 구현한다. 인류는 항상 영웅을 바랐고, 영웅서사는 수많은 변주를 통해 재해석 되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단 하나가 있다면 바로 존경받을 수 있는 위대함이라는 것이다. 이는 명예로 치환할 수 있으며 이란에서 명예란 돈보다 더 중요하다. 때문에 종종 명예살인이 일어나기도 하며,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어떤 영웅>을 통해 이란의 가족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란 사회에서 한 사람의 잘못은 가족 모두의 허물로 되돌아와,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가족 이름이 더럽혀질 경우 나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거든다.

귀휴 나온 처남 라힘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드는 매형, 동생이 곤경에 처하자 증인을 자처하는 누나, 라힘의 거짓말에 동원된 아들과 약혼자 등. 쉽게 끊을 수 없는 끈끈한 가족의 유대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사소한 거짓말이 눈덩이가 될 때

빚을 제때 갚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 중인 라힘(아미르 자디디)은 짧은 휴가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여자 친구가 금화 든 가방을 주웠는데 이를 팔아 빚도 갚고, 감방 생활을 청산하고, 새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건지. 찜찜한 일이 계속되자 마음을 고쳐먹고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가방을 주웠다는 전단을 붙였더니 한 여인이 찾아갔다. 금화를 팔아 보석금을 낼 수도 있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긴 건 마음이 시키는 일이었다. 금화의 무게만큼 짓눌렸던 양심이 드디어 숨 쉬게 되어 너무 홀가분했다.

이후, 재소자의 선행을 알게 된 교도소는 라힘을 칭찬하며 TV 출연을 주선했다. 방송의 힘은 확실한 효과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사람이라며 어딜 가나 칭찬 일색이었다. 라힘의 어깨는 한없이 높아진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도 보장되었다. 비로소 돈을 갚을 기회가 생겼다. 여자친구와 결혼도 하고 아들과 함께 살 일을 상상했다. 일가친척, 동네 사람을 불러 큰 잔치도 벌이게 된다. 이제 꽃길만 걸으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착한 일을 했음에도 영화는 급속도로 험악해진다. 희망에 부풀었던 시간은 찰나였고, 야속하게 절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영웅이 되기까지

<어떤 영웅>은 이란 사회를 정통으로 파고들며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말이 내내 쫓아다닌다. 선인도 악인도 아닌 그저 보통 사람의 사연이라 내 이야기처럼 공감된다.

한 남자의 일과를 그저 따라가는 것 같아 보여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영화 초반 매형의 일터를 찾아가는 모습으로 상징된다. 매형이 일하는 유적지에 오르던 장면과 귀휴를 마치고 교도소로 돌아가는 장면은 감독이 하고 싶은 주제를 함축적으로 품고 있다. 오프닝과 클로징이 맞물리는 완벽한 조화와 이야기의 힘이 영화를 더 빛나게 하고 있다.

뒤죽박죽인 딜레마에 처한 인물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의 맥을 이어간다. 순간의 선택, 작은 실수가 일상에서 어떤 균열을 만드는지도 촘촘히 보여준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주인공. 흡사 늪에 빠진 사람처럼 안타깝다. 임기응변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계속 압박받는 상황이 긴장감과 답답함을 동시에 안긴다.

물질적 욕심을 억누르기는 힘들고, 선의를 보여도 복잡해지는 게 사람 사는 일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본질이 희석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라힘의 고백을 교도소장은 이미지 쇄신에 이용하고, 방송국은 시청률을 챙겼으며, 자선 재단은 모금 행사를 벌인다. 각각 백 퍼센트 순수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던 만큼, 연결고리는 모두를 난처하게 한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거짓말 때문에 라힘 혼자서는 수습 불가다. 급기야 어린 아들까지 동원해 명예 회복에 나서려고 했지만, 아버지로서 지켜야 할선은 넘지 않는다.

내내 해맑은 미소와 구부정한 어깨로 안쓰러워 보이는 라힘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자 어두워 진다. 그가 다 빼앗기면서도 꼭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아도 아들에게만은 영웅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명예이지 않을까. 영화가 끝나도 쉽게 가시지 않던 양가적 감정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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