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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필 작가가 된 키작은 남자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이는 때 손 편지로 전해지는 아날로그 감성과 낭만적인 언어로 탄생한 뮤지컬 로맨스 한편이 개봉한다. 바로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으로 대표되는 워킹 타이틀과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의 로맨스 장인 조 라이트가 만난 <시라노>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고전적인 분위기가 담뿍 담겨 화려하고 아찔한 장미 보다 소박한 수선화처럼 은은한 영화가 탄생했다.

워킹 타이들은 영국을 대표하는 로맨스 명가로 이름만 대면 들어봤을 영화로 흥행과 평단을 사로 잡았다. 감미로운 OST, 품격 있는 시선과 뭉클한 스토리를 겸비해 많은 사랑을 받은 명실상부 로맨스계의 명품 브랜드다. 믿고 보는 제작사와 보증된 감독이 만나 뮤지컬과 시대극을 조합하니 한 땀 한 땀 수놓은 장인의 품격이 느껴진다. 원작의 감성을 유지한 채 변하지 않는 사랑의 숭고함을 노래한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의 사랑법

영화 <시라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편지를 대신 써주던 용기 없는 시인 시라노(피터 딘클리지)와 아름다운 여인 록산(헤일리 베넷)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오랜 시간 한마을에서 친구와 남매 사이를 오가던 시라노와 록산. 시라노는 시인이자 군인으로 매력적인 남성이다. 10대 1로 자객을 물리칠 정도로 검술이 뛰어나고 혀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언변과 셰익스피어 부럽지 않은 문학적 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 바로 록산에게 고백할 용기와 작은 키다.

한편, 정략결혼 보다 먹는 게 더 좋은 철부지 록산. 남들이 혼기 꽉 찬 고아라고 놀리지만 아름다운 낭만적 사랑을 아직도 꿈꾼다. 허나 현실은 생계를 잇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해야만 한다. 들이대는 중년 백작의 마음을 애써 돌려보내길 며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수락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근위대 신병 크리스티앙(캘빈 해리슨 주니어)과 사랑에 빠져, 눈치도 없이 자신을 몰래 짝사랑해온 시라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절친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과 친구로서 언제까지나 지켜 주라며 당부했기에 시라노는 고민 끝에 두 사람을 맺어주기에 이른다.

마음에도 없는 두 사람의 마담뚜 역할을 하게 된 시라노. 언변과 필력이 부족한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대신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시라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록산을 향한 절절한 마음을 펜에 담아 고백하기에 이른다. 세상에서 당신을 누구보다 더 사랑했노라고, 당신도 모르는 어떤 모습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며, 사랑의 세레나데로 록산의 마음을 채워 준다. 과연 시라노는 언제까지 정체를 숨길 수 있을까. 세 사람의 보일 듯 말 듯 한 삼각관계는 어떻게 끝날까.

고전 재해석의 득과 실

영화는 외모에 가려진 진실의 사랑을 논한다. 원작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피터 딘클리지의 아내인 에리카 슈미트가 재해석했다. 17세기 큰 코를 가진 실존 인물이자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남성을 21세기 외모 중 키 작은 남성으로 바꾸는 신의 한수를 두었다.

준수한 외모면 으레 지적이고 성격도 좋을 거란 생각, 몸과 마음이 일치할 거란 고정관념을 철저히 부수며 각자의 결핍을 떠올리게 한다. 시라노처럼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와 욕망이 존재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누구나 가질법한 보편적인 감정을 끄집어 낸 설정이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콤플렉스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면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두려움, 그밖에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를 편지를 통해 전달한다.

록산을 사랑하는 두 남성은 서로에게서 부족했던 외모와 글재주를 빌려 한 사람을 죽도록 사랑한다. 잘생기고 늠름한 외모를 좋아하는 록산에게 크리스티앙이 앞에 나서고, 시라노는 시적 문장으로 록산의 마음을 녹이며 무르익는다. 이를 증명하듯 132cm의 키에서 뿜어 나오는 피터 딘클리지의 카리스마와 애절함이 스크린에서 빛난다. 몇 번 재해석된 ‘시라노’ 지만 중저음 음색과 섬세한 표정연기가 만나자 새로운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상반된, 부드럽고 로맨틱한 모습은 캐릭터의 진성성을 넘어 심장을 두드린다.

하지만 뮤지컬 장르를 택하든, 고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드라마적 장르를 취하든 한 가지만 했어야 했다. 기존 뮤지컬 영화화는 거리가 있는 춤과 노래, 안무도 어색하다. 단체로 추는 군무도 맞지 않아 오히려 완성도에 해를 입힐 지경이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노래와 춤은 러닝타임 중 갑자기 춤추기 시작하는 인도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노>가 좋았다면 유럽 감성의 로맨스물 <업 포 러브>를 추천한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준 남자의 목소리에 반한 136cm의 키 작은 남자와 이에 실망한 여자가 결국 외모와 상관없이 사랑을 확인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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