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그넌트(Malignant)’란 진행성으로 악화하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종양을 뜻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악에 받쳐’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초반부는 작은 세포로 시작해 몸 전체를 장악해 버리는 악성종양 같은 빌런의 정체를 찾아가는 추리 범죄 장르의 성격을 띠며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내 그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리는 장르의 변주는 여러 번 시도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익숙한 장르 같지만 중반부로 넘어가 그것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까지도 똬리를 틀어 답을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쾌감의 잔인한 묘사도 서슴없다. 그렇다. 공포영화의 대가 ‘제임스 완’이 돌아왔다는 신호다.
정체불명의 존재와 대면한 여성
영화는 1993년 해안가의 성처럼 보이는 시미언 병원의 일화부터 시작한다. 아동 재건수술 중 환자의 상태와 연구 기록을 담은 파운드 푸티지가 교차한다. 제삼자에 의해 발견된 영상으로 마치 실제 일어난 일처럼 느끼도록 꾸몄다. 병원의 직원을 살해하며 난동을 부린 정체불명의 생명체와의 고군분투를 기록한 위버 박사의 오프닝 영상이 끝나면 바로 현재로 넘어와 지난 20년 가까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임신 중인 매디슨(애나벨 월리스)은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벌써 여러 번 유산의 경험이 있어 이번 아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그날도 유난히 몸이 좋지 않아 쉬려고 온 집에서 남편과의 말다툼을 피할 수 없었다. 좋게 말로 끝내려고 했지만 옥신각신 한 끝에 뒤통수를 부딪힌 매디슨은 피가 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날 밤 괴한의 침입으로 남편은 잔혹하게 살해되고 아이마저 잃게 된다. 2주 뒤 퇴원해 텅 빈 집으로 혼자 돌아온 매디슨은 그날의 공포에서 회복되지 않아 두렵기만 했다. 스스로 상상일 뿐이라며 주문을 걸어보지만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고 방치된다. 그날도 빨랫감을 모으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무렵, 가위에 눌린 듯 사지가 마비되며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 꿈이나 환각으로 여겼지만 반복적으로 생생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자 견딜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나 아무도 매디슨이 본 것을 믿어주지 않는다. 같은 공간이 있지 않았음에도 살해 현장을 봤다는 주장에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언니를 믿는 동생 시드니(매디 해슨)는 형사 케코아(조지 영)와 레지나(마이콜 브리아나 화이트)를 설득한다. 결국, 매디슨이 본 대로 연쇄살인이 일어나자 두 형사는 본격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매디슨이 주장하는 대로 자기 상상 속 친구 ‘가브리엘’이 한 일일까. 매디슨에만 보인다는 범인으로 인해 사건은 난항을 겪고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호러 본업으로 복귀한 제임스 완
제임스 완 감독
<말리그넌트>의 독특한 점은 여러 장르가 혼합 속에서 한 여성을 중심으로 한 뚝심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이다. 남다른 자매애와 형사 콤비가 벌이는 유머까지 겸비해 가족의 애틋함을 확인하는 유종의 미까지 거둔다. 한 인터뷰를 통해 “말리그넌트는 마치 호러 버전의 겨울왕국”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기존 장르의 틀을 따라가면서도 파괴하고 편집해 이어 붙이 솜씨가 수준급인 장인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완’이란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첫 장편 영화 <쏘우>의 기가 막힌 설정으로 저예산 영화의 흥행 저력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인시디어스>를 통해 훗날 <컨저링>의 초석이 될 하우스 호러 장르를 만들어 시리즈물로 기획되었다. 이후 <컨저링>은 제임스 완이 구축한 컨저링 유니버스의 시작으로 <애나벨>, <더 넌>, <요로나의 저주> 등으로 확장된 세계관을 가진 연결고리로 주목받은 바 있다. 하지만 재능을 공포 영화로만 국한하지 않고 <데스 센텐스>,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등 액션 장르까지 섭렵, DC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아쿠아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DCEU의 부활을 알리며 불패신화를 다시 썼다.
영화는 그동안 제임스 완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쏘우>, <인시디어스>, <컨저링>을 아우르는 총집합이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한 새로운 지알로의 변주다. ‘지알로’ 장르란 이탈리아어로 ‘노랑’을 뜻하며 잔혹한 범죄소설을 말하는데 <쏘우>에서 보여준 애정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다. 본업으로 돌아온 감독이 하고 싶었던 장르에 도전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한 작품이다. <서스페리아>의 다리오 아르젠토로 대표되는 지알로 공포 장르를 향한 러브 레터이면서, 범인을 추적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범죄 추리극,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는 심리 스릴러, 집이나 병원에서 벌어지는 밀실과 하우스 공포까지 더한 복합적인 장르의 파티라고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