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2012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한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이름을 알린 구파도 감독의 신작이다. 2017년 <몬몬몬 몬스터>를 통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계기로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으며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 전 세계 최초 상영되었다. 대만 현재 팬데믹으로 개봉이 밀린 상태다.
이번에도 60여 편의 본인 소설을 각색해 영화화했다. 학원물, 로맨스, 호러 등 다양한 장르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이야기꾼이자 시나리오 작가, 연출가 등으로 활약 중이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한국 제작사와 손잡고 만든 영화로 각별한 한국 사랑을 밝혔다.
동네에서 농구 시합을 벌이던 중 갑자기 벼락에 맞아 급사한 샤오룬(가진동)은 모든 생의 기억을 잊어버린 채 사후세계에 당도한다. 복고풍 느낌 물씬, 아날로그적인 사후세계는 어렵사리 샤오룬의 전생 기록을 CD로 제작하고 염주를 채워 준다. 염주는 일종의 전생 성적표라 할 수 있다. 하얀색이 많은 수록 고등 생물로 환생할 수 있고 검은색이 많으면 바퀴벌레나 곤충 등 미물로 태어난다.
안타깝게도 샤오룬은 흰 염주만이 환생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없었다. 흰색보다 검은색이 많아 바퀴벌레로 환생할 것인지, 신을 도와 아르바이트로 흰색을 얻을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월로의 임무를 맡으며 파트너 핑키(왕정)와 이승에서 부부의 인연을 만들게 된다.
앞서 말한 ‘월로’란 월하노인을 말하는데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서양의 큐피드인 셈이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이승의 인연을 이어주는 존재다. 샤오룬과 핑키는 이 일에 재미를 붙여가던 중 과거 연인이었던 샤오미(송운화)와 우연히 마주치며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다.
샤오룬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샤오미의 곁을 맴돌며 기쁨을 만끽하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어야 하는 샤오미의 운명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붉은 실을 엮는 순간 타들어 가며 갖은 애를 써도 실패하자, 사후세계의 모든 월로가 샤오미를 향한 도전장을 내민다.
영화는 로맨스물의 탈을 쓰고 동양적인 철학으로 사후세계, 윤회, 환생, 인연을 다루는 독특한 세계관이 특징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은 만 년이 지나도 계속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는 운명론적인 판타지를 가미했다. 삶과 죽음으로 성장하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죽음이 결코 슬프고 무서운 일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너의 이름은.>에서 보여준 붉은 실이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도 등장해 반갑다. 붉은 실로 엮인 인연이 내세와 현세에도 계속된다는 설정은 동양에서 말하는 ‘인연’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살아 있을 때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을 죽어서 이룰 수 있다는 차별점을 지닌다. 억울함으로 똘똘 뭉쳐 이승으로 돌아와 괴롭히는 한국 영혼의 한스러운 정서보다 귀엽고 톡톡 튀는 발랄함이 매력이다. <신과 함께>처럼 심판받는 장소가 아닌 조금은 재미있고 유쾌한 곳으로 묘사해 두려움을 없앴다.
때문에 사후세계는 귀엽고 재미있는 일이 가득한 발랄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만화적인 캐릭터를 구축함으로써 커플이 되어 지상 세계의 사람을 엮어주는 일이 더욱 상징적으로 부각되었다. <엽기적인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전반부는 아기자기한 면이 있지만 러닝타임이 진행될수록 감동과 슬픔이 교차하며 눈물샘을 건드린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반려동물이 있다면 공감되는 이야기로 128분이 꽉 채워졌다.
주인공들이 겪는 사후세계가 마치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게 묘사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면서 실패와 슬픔을 알아가고 누군가를 보호하는 입장으로 변하는 성장이 바로 인생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는 송운하와 왕정의 연기를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에는 <나의 소녀시대>로 인지도를 높인 송운하의 또 다른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반교 : 디텐션>에서 슬픈 소녀를 연기한 왕정이 이번에는 핑크빛으로 물들인 헤어스타일과 통통 튀는 분위기로 변신해 신선함을 준다. 가진동과 세 번째 작품을 함께한 구파도 감독은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로 가진동을 꼽으며 파트너십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