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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야만의 시대 여성의 눈물을 담은 거장의 선택

‘라스트 듀얼’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 블록버스터 시대극을 선보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 리들리 스콧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SF 장르와 히어로물에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시대극과는 멀어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그가 시대극으로 돌아왔을 때 관객들의 기대는 얼마나 웅장하고 전율이 느껴지는 규모와 이야기를 선보일까 하는 궁금증일 것이다. 그는 시대극이 지닌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시대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는 시각을 선보인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는 포스터의 비장미만 보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이 떠오른다. 줄거리만 봐도 비장미가 넘친다. 14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유서 깊은 카루주 가의 장과 그의 친구 자크의 우정이 무너지고 이것이 대결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룬다.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자크가 겁탈하고 이 사실을 부인하면서 장은 가문의 명예와 아내를 위해 자크와 1대1 결투를 벌이고자 한다.

거장이 주목한 건 중세 기사들의 명예와 낭만이 담긴 대결도, 야만의 시대에서 지키고 싶은 사랑과 우정 같은 소중한 가치를 주목하는 로망도 아니다. 현대사회에 불고 있는 PC운동으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여성인권의 문제를 시민혁명과 종교혁명 이전 야만과 억압의 시대였던 프랑스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감독은 이를 위해 연출적인 트릭을 활용한다. 이 작품은 총 3장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장’이라는 개념은 연극의 ‘막’과 같다. 때문에 관객은 웅장하고 비장미가 넘치는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란 착각을 느낀다. 앞서 언급했던 <햄릿>을 비롯해 <리어왕>이나 <맥베스>같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펼쳐질 것만 같다. 이 장은 세 인물의 시점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구성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그의 대표작 <라쇼몽>에서 선보였던 것과 같다. 사건은 하나이지만 각기 다른 세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다르게 그린다.

‘라스트 듀얼’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장의 주인공은 장이다. 명문가의 자손인 그는 권력가 피에르의 눈 밖에 나면서 빈곤에 시달린다. 처세술에 능하지 못한 그는 가문을 지키고자 전장에 나가는가 하면 반역자 집안이지만 부를 지닌 마르그리트와 혼인을 한다. 허나 그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친구인 자크는 피에르의 옆에 붙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가 목숨을 건 전장에 나간 사이, 마르그리트는 자크에게 겁탈당하고, 이에 분노를 느낀 장은 가문과 아내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자크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장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1장의 내용은 다소 아둔하지만 우직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장의 캐릭터를 그린다. 장이 피에르와 자크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나가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그가 아내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결투에 나서고자 한다는 점은 중세 기사 문학인 로망스를 보는 듯하다. 서부극과 일본 사무라이물이 가져온 중세 기사도 문학의 비장미와 로망을 시대극에 능통한 감독은 완벽하게 구축한다.

2장의 주인공은 자크다.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신부가 되고자 했던 그는 피에르의 눈에 들어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는 장과의 우정을 진심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나 권력층에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는 장에게 점점 거리감을 느낀다. 거칠고 폭력적인 면을 지닌 그는 마르그리트에게 진실 된 사랑을 느낀다. 그의 망상은 마르그리트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지점에 다다른다.

자크의 이야기는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처럼 실화 속 저속한 삶을 살다간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 나름의 변명과 이유를 담아내면서 극적인 분노와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자크의 시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종교다. 당시 종교는 권력자의 편에 섰고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줬다. 작품이 결말부 자막을 통해 십자군 전쟁을 언급한 것 역시 이런 부패한 종교를 강조한 지점이라 볼 수 있다. 종교인들을 앞장 서 자크를 도와주며 그를 변호하는 잘못된 모습을 보여준다.

‘라스트 듀얼’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3장의 주인공은 마르그리트다. 이미 두 시점을 통해 완성된 이야기를 지녔던 작품은 3장을 보여주며 ‘진실 된 이야기’란 자막을 강조한다. 앞서 두 장에서는 같은 연출을 선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독은 마르그리트의 시점이 이 이야기의 ‘진실’임을 강조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반전’에 있다. 구성상 큰 충격을,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두 남자의 격렬한 대결에 빠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마르그리트의 ‘대결’에 주목한다.

마르그리트에게 고통을 준 대상은 자크만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3장의 반전은 그 힘이 상당하다. 가문이란 이름으로 막대한 지참금의 요구와 후계자를 위해 폭력적인 성관계를 요구해 온 장의 모습을 통해 마르그리트가 고통 속에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며 장이 패배할 경우 남성을 무고죄로 고발한 것이 되는 마르그리트가 화형을 당한다는 사실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여성에게 가해졌던 가혹한 폭력을 보여준다.

마지막 20분간 펼쳐지는 장과 자크의 대결장면은 그 시각적인 처절함과 함께 마르그리트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으로 인해 심리적인 처절함도 함께 담아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할복>이 각각 폭력과 잘못된 인습과 전통으로 얼룩진 서부극과 사무라이물의 이면을 들춰냈다면, 이 영화는 기사극의 이면을 들춘다.

여성을 향한 로망스와 명예를 위한 대결의 낭만을 담아냈다 여겼던 기사극이 사실은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며 허울뿐인 명예에 집착했다는 점을 보여준 순간 낭만은 무너지고 시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는 현 시대에 화두라 할 수 있는 여성인권 문제를 시대극에 담아내며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을 만들어낸 거장의 역량이 돋보이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시대극의 요소를 통해 시대극을 파괴하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웅장함을 담은 영화는 아니다. 그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만들기보다는 현 시대의 문제점을 과거 시점의 시대극에 담아 새로운 가공을 선보인다. 총 3장에 걸쳐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특히 조디 코머는 맷 데이먼과 아담 드라이버라는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 사이에서 인생 연기를 선보이며 3막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는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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