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t Viewed

Categories

<프랑스> 두 얼굴의 프랑스와 미디어를 고발하다

브뤼노 뒤몽의 영화가 개봉한다니 한걸음에 달려가 볼 수밖에 없었다. 자국에서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도무지 영화제가 아니고서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감독으로 유명해서다. 보는 사람에 따라 괴작과 수작 사이를 오가는 명확한 호불호가 극명한 감독 중 하나다. 그의 세계관에 진입하면 즐겁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관람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관객이 속출하기도 한다.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전작보다 훨씬 매끄러운 서사가 있어 다행이었다. 감독은 초기 무명배우를 쓰던 경향을 버리고 톱스타 줄리엣 비노쉬와 작업이 만족스러웠는지 이번에는 레아 세두를 캐스팅했다.

프랑스 정통 영화 메거진 ‘카이에 뒤 시네마’가 해마다 발표하는 ‘영화 베스트 10’리스트에 <프랑스>를 비롯해 총 8번 올라 프랑스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이력이 있다. 철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교단에 섰다가 늦은 나이에 영화에 입문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적 감독이다.

인기 고공 행진하던 앵커의 뜻밖의 추락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는 프랑스 간판스타다. 스튜디오를 장악하는 뉴스 채널의 앵커이자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 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프랑스가 전하는 뉴스는 종일 이슈가 된다. 그녀만의 인장이 있는 단독 보도가 많아 인플루언서로도 신뢰를 얻고 있다.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고 닮고 싶어한다. 시청률은 고공행진이고 인터넷에서는 모두 프랑스 이야기뿐이다.

뉴스는 항상 자신을 중심에 두고 방영된다. 최대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언론인의 자세보다 다소 편향적인 뉴스 보도도 서슴없다. 앞에서는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카메라 뒤에서는 염세적이고 냉소적이다. 간혹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면 악어의 눈물을 보이며 스리슬쩍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며칠 조용히 지내면 사람들은 금방 잊고 또다시 프랑스의 모습에 열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에 이민 가정 출신 바티스트를 차로 치는 대형 사고를 낸 프랑스. 이후 내면의 변화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치료와 보상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끄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던 거다.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불행했다. 그게 무엇이라 인지할 수 없어 절망적이고 깊은 회의감 마저든다.

결국 프랑스는 자신을 향해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와 주변 사람들의 눈에 지칠 대로 지쳐 돌연 은퇴 선언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존재 자체가 투명해지길, 되도록 잊히길 원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한적한 알프스 자락의 호화 요양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곳에서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라틴어 교수와 사랑에 빠져 치유 받았다고 느낄 무렵 충격적인 사실과 접한다. 그로부터 프랑스는 또다시 무너진다.

과연 프랑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 뜬금없는 대사와 행동, 카메라를 응시하며 쉴 새 없이 눈물 흘리는 주인공. 과연 영화가 말하려는 게 무엇일까. 그 의도가 더욱 궁금해 나름대로 해석을 더해 봤다.

프랑스를 의인화해 말하고자 했던 주제는?

사실 프랑스의 삶은 겉으로 봤을 때 완벽 그 자체였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과 명성, 멋진 남편과 귀여운 아들이 있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유명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인기에 걸려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프랑스는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는다.

어디에서도 진실과 안정을 찾을 수 없는 프랑스는 가정에서조차 서걱거림을 감지하고 따스함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작가인 남편과는 사랑이 식었고 아들과는 소통이 어렵다. 피곤함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도 공허하고, 가족의 품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해 외롭다. 풍요 속의 빈곤, 끝없는 공허함은 익숙하기 때문에 더욱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을 가리킨다.

영화는 아름다운 외모와 패션 스타일, 언변을 가진 프랑스를 통해 두 얼굴의 프랑스(국가)와 황색언론(미디어)을 비판한다. 화려한 패션 감각, 붉은 립스틱과 금발은 시청자의 시각을 단숨에 빼앗는다. 무형의 국가나 미디어를 사람으로 의인화해 프랑스란 이름을 달았다.

레아 세두 자체의 빛나는 외모와 고혹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맞춤 캐스팅이다. 고몽 회장의 증손녀이지만 일반인과 결혼하고 금수저임을 드러내지 않는 배우 레아 세두를 실제 삶을 통해 앞으로의 프랑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으로 선동하고 진실은 감추는 연극 같은 세상을 향해 감독은 ‘가짜를 보여줌으로써 진짜에 근접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프랑스는 위험천만한 분쟁 지역으로 현장 취재를 자주 간다. 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담기보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유도하고 자기중심적 연출하고 편집한다. 이런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접근은 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하지만 시청률과 댓글에 중독된 프랑스는 멈출 방법을 찾지 못해 애끊는다.

의도적인 과장과 화려한 미학에서 디지털 시대에 편집되고 조작되는 복잡한 진실에 접근하려 한다. 가짜인 껍데기를 계속 들쑤시고 가면을 벗기려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프랑스의 내면은 혼란스럽고 수시로 바뀐다. 어디 하나 믿을 구석 없이 겉돌면서 감당할 수 없어 울고 또 운다.

과연 당신이 프랑스의 민낯을 알고도 지지할 수 있는지, 추악함을 비추는 불편한 거울이 아닌지, 잊지 않길 바라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아름다운 괴물 프랑스는 당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위선을 조롱할 것이다. 항상 진실을 향해 깨어 있는지, 귀찮다고 눈 감아 버리지는 않았느냐고 말이다.



    Leave Your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