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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 돼지를 찾다보면 잃어버린 인생을 발견할 것

영화 <피그> 속 캐릭터 ‘롭’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다 돌연 슬럼프를 겪게 된 니콜라스 케이지와 평행이론처럼 느껴진다. 본인 인생사를 고스란히 녹여낸 것 같은 이야기는 참회록 같아 보였다. 애처롭지만 담담하고 위로해 주고 싶은 캐릭터였다. 훔쳐 간 돼지를 찾기 위해 위험도 감수하는 롭을 보고 “그깟 돼지, 하나 사면 되지 않나”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에게 “걔 아니면 안 돼, 소중한 가족이야”라고 말하는 태도를 수긍하게 된다. 그만큼 관객인 나도 롭의 감정에 이입해 사랑하는 무엇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는 20세기 후반 할리우드를 주름 잡는 스타였다. <더 록>, <콘 에어>, <페이스 오프> 같은 액션부터 <시티 오브 엔젤>, <패밀리 맨> 등 드라마 장르까지 섭렵했었다. 1996년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 정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잇따른 흥행 실패와 슬럼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최고의 배우였지만 금세 할리우드에서 잊혀 B급 영화를 전전했고, 메이저 제작사는 그를 찾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0년 후반부터 재기를 노력하며 기름칠을 시작했다. 보이지 않고 찾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연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꾸준히 자신만의 자리에서 작은 영화라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걸일까. 마침내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의 데뷔작 <피그>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라진 돼지를 찾아 떠 나는 여정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송로버섯(트러플)을 기가 막히게 찾는 돼지와 단둘이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흔한 핸드폰도 없이 오로지 채취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고 가진 것에 충분히 감사하며 산다. 소유욕이나 물욕도 없다. 그저 돼지와 한 끼 잘 먹고 하루 잘 살면 되는 것에 만족한다. 초로의 야인처럼 생활하는 그를 유일하게 찾아오는 사람은 트러플 구매자 아미르(알렉스 울프) 뿐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밤, 괴한이 침입해 돼지를 훔쳐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롭은 피투성이로 깨진 머리를 치료하지도 않은 채 15년 만에 도시 포클랜드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혼란스러운 롭을 도와줄 유일한 조력자 아미르는 내키지 않았지만 이 여정에 동행할 수밖에 없다.

이 바닥에서 최고의 푸드 바이어가 되고 싶지만 이미 성공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 치고 있기 때문이다. 롭이 조달해 주는 최상급 트러플만 있다면 성공은 물론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부푼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체 돈도 아닌 돼지를 누가 훔쳐 간 것일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한 걸까? 영화는 범인을 찾고 복수를 꿈꿀 거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 줄거리만 보면 흡사 <존 윅> 시리즈를 연상하게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퍼스트 카우>에 가깝다. 따스한 위로와 마음의 평안이 스크린 너머까지 전달된다. 도시로 향하며 한때 최고의 셰프였던 과거를 지워야만 했던 이유가 밝혀지자 공감을 넘어 진한 여운을 안긴다. 단, 오감을 자극하는 재료와 음식이 등장해 식전에 감상하면 상당한 괴로움을 유발할 수 있겠다. 행복의 기억을 맛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음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는 법

<피그>는 총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때마다 각각 요리 이름이 등장하는데 독특한 이름을 가져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는 감독 마이클 사노스티의 의도된 설정이자 이름 없이(정체성) 살아가고 있는 인물에게 이름을 되찾아 주는 치유의 작업으로 해석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산속에서 돼지와 살아가는 한 남자의 15년 전 사연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 각자의 인생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롭은 상실의 슬픔을 이겨낼 시간이 충분히 필요했고 삶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거다. 빼앗긴 돼지는 일종의 메타포이자 각자의 인생의 소중한 것으로 대입해 볼 수 있겠다.

연인 로리를 잃고 스스로 속세를 떠나야만 했던 기구한 사연이 하나씩 밝혀지며 귀한 가치를 깨닫는 게 된다. 돼지를 찾는 여정은 결국 나를 찾는 일이며,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짜를 찾으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누군가와 만나고 행복했다가도 불현듯 이별이 찾아오는 롤러코스터 같은 희로애락을 롭이라는 인물에 투영했다.

롭은 셰프였던 과거를 발휘해 정성스러운 한 끼를 대접한다. 오래된 것은 먹을 수 없이 변질된 것, 상한 것만 뜻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콤하게 변하는 감, 묵은지나 치즈처럼 기다림으로 가치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식재료로 정성껏 요리한 음식은 누군가와 쉽게 얻을 수 없는 추억이나 깊은 관계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음식과 관계 모두 오랜 숙성과 기다림으로 가치가 생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처럼 보이나 사실은 두 남자가 길을 떠나는 버디 장르이자 로드 무비, 가족의 화해를 맞는 드라마적 성격을 띤다. 어쩌면 아름다운 대자연을 무대로 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음식으로 치유받는 힐링 무비 같기도 하다.

대체로 친환경적이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포틀랜드의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알차게 들어 있다. 미국 오리건 주에 속하는 포틀랜드는 수제 맥주, 푸드 트럭, 자연산 먹거리, 커피, 킨포크 등으로 대표되 힙한 도시다.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환경과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는 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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